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빠짐없이 찾아오는 인물이 있다. 에브네저 스크루지와 산타 클로스다. 한 사람은 짜디짠 구두쇠로 못된 인간의 전형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는 인기 있는 할아버지의 상징이다.
스크루지의 직업이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 ‘크리스마스 캐롤’을 통해 그를 창조해 낸 작가 찰스 디킨스가 이를 밝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채업자가 아니면 변호사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어찌 됐든 작품 초기에 등장하는 그의 모습은 단순히 인색함을 넘어 크리스마스에 대한 증오에 불타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고는 “바, 험벅(사기)!”라고 외치는가 하면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자선 요청에는 “감옥과 빈민 구제소는 왜 있는가” 하고 반문한다.
그런 그를 개과천선하게 만든 것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찾아온 네 유령이다. 전직 파트너였던 제이콥 말리의 유령이 제일 먼저 나타나 스크루지가 지금과 같은 삶을 살면 자기처럼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며 앞으로 올 과거, 현재, 미래 크리스마스 유령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라고 경고한다.
차례차례 찾아오는 이들 세 유령 중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과거의 크리스마스 유령’이다. 이 유령을 따라가 보면 어떻게 스크루지가 지금 같은 인물이 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어린 스크루지는 아버지에 의해 버려진 인물이다. 일찍 기숙사에 집어넣고 크리스마스 때도 찾아보지 않는다. 그가 왜 그토록 크리스마스를 싫어하게 됐는지 이해가 간다.
가족에게 버림받고 동료들에게 따돌림당한 그는 돈을 버는 것으로 정서적 결핍을 만회하려 한다. 약혼녀가 결혼을 원하지만 그는 경제적 안정을 이룰 때까지 미루자고 고집을 부린다. 기다리다 지친 약혼녀 벨은 결국 그를 떠난다. 그의 돈에 대한 집착을 감안할 때 그를 만족시킬 ‘경제적 안정’은 평생 오지 않으리라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약혼녀가 떠나고 유일한 오뉘 프랜까지 죽자 스크루지는 점점 표독스러워지고 결국 지금처럼 비참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주는 교훈은 두 가지다. 하나는 어려서 사랑 받지 못한 아이들이 커서 어떤 위험에 빠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 것이다. 외형적으로 아무리 성공한 것처럼 보여도 내면의 상처는 오래 가며 깊게 남아 있다. 이민 생활에 바쁘다는 이유로 자녀와 함께 시간 보내는 것을 등한시하는 부모들은 새겨둬야 할 대목이다. 또 하나의 교훈은 아무리 타락한 인간도 잘못을 뉘우치고 새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점이다. 스크루지가 회개할 수 있다면 모든 인간은 회개할 수 있다.
스크루지 이야기는 자본주의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스크루지가 잘못만 한 것은 아니다. 그는 비즈니스를 하며 일자리를 창출했고 고객들의 필요를 충족시켰으며 그가 근검 절약해 축적한 자본은 산업 발전에 이용됐을 것이다. 또 동화가 아닌 실제 세계에서 산타 클로스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스크루지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문제의 핵심은 스크루지에게 돈을 모으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똑같이 근대화와 산업화를 경험했지만 영국과 미국의 귀족과 자본가는 ‘성난 민중’에 의해 목이 잘리지 않은 반면 프랑스와 러시아에서는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영국과 미국에서 이들에 의한 빈민 구제와 자선 사업이 활발히 일어나는 동안 프랑스와 러시아 귀족들은 자기 이익을 챙기는데 정신이 없었던 사실이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미국인들은 지금도 가장 자선을 많이 하는 국민의 하나다. 한국은 지난 수십 년간의 눈부신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 돕기에 앞장서고 있다는 이야기를 별로 듣지 못했다. 한국과 LA의 한인들은 어느 쪽 길을 가려 하는 것일까.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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