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우리 지구는 한 번 공전하고 365번 자전하여 벌써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연말이 되면 으레 ‘신년’이라든가 ‘송구영신’이라는 초대를 받게 된다. 어려서 정월 초하루가 되면 새 옷을 입고, 새 신을 신고, 친구 끼리끼리 짝지어 동네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러 돌아다녔다. 모두 다 절을 받고 나서는 “많이 컸구나” “공부 잘 해라” 하시며 어떤 집에서는 떡도 차려주고, 어떤 집에서는 돈도 주시기도 하면 친구와 웃고 떠들며 조그만 가슴이 행복했다.
우리에게는 한 해 중에서 가장 기쁘고 즐거운 며칠을 갖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어린이들이 과연 새해에 이런 기쁨을 가질 수 있을는지 또 세계의 어떤 어린이가 이러한 기쁨을 가질 수 있을지 나는 새해가 오면 우리가 가졌던 어린 시절만이 세상없이 즐거웠던 것으로 생각된다.
누구에게나 동쪽으로 붉은 해가 솟고 서쪽으로 흰 달이 지는 장관을 보았을 것이다. 내가 아침에 바닷가에서 바라보니 커다란 만월이 물 속으로 가라앉고 동쪽에선 검은 바다 위로 소담한 장밋빛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이야말로 지구의 자전 공전이 부리는 조화로써 이러한 가관을 보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아침잠을 희생하고 나섰을 것인데도 아침잠이 많은 나로서는 두 서너 번밖에 안 되는 것같이 기억된다.
나는 이 아름다운 광경 앞에서 가는 해 오는 해를 생각하고, 될 수 있으면 내가 아는 모두에게 모든 일이 잘 되어 동쪽에 솟는 해처럼 찬란한 새해를 갖게 되기를 염원하였다. 그러나 막상 나 자신에게는 아무리 생각해도 동쪽의 붉은 해를 생각할 수 없었다. 동쪽에서 솟는 해는 역시 어린이들에게나 젊은 세대의 것인가 보다.
늙어 가는 세대도 내일이 있지만, 산다는 것과 죽음의 뜻은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위즈워즈가 한 손에 해, 한 손에 달을 들고 쾌재를 부르짖고 풍성한 생에 대한 포부를 말한 것을 생각하며, 불과 몇 달 전 서울대학교 개교기념식에서 만나 활짝 웃던 황우석 교수를 기억하게 한다.
트래비스(Travis)의 ‘사이드’(Side)라는 노래를 들어보면 인생은 메이저와 마이너 키라는 가사가 나온다. 부정할 수 없는 명제이다. 메이저만 무한히 돌린다거나 마이너만으로 가득 채워진 인생 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 찰스 슐츠의 만화 ‘피너츠’(스누피로 잘 알려진 만화의 원제)에도 기가 막힌 명언이 나온다. 찰리 브라운의 친구, 프랭클린의 대사다.
“우리 할아버지는 지나간 인생이 당신에게 비교적 친절했다고 얘기해… 그런데 한 해 한 해 자세히 생각해 보면 불친절한 점도 많았대”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은 마지막 하나 남은 쿠키” “누군가와 굉장히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점점 멀어져 가는 것 같기도 하다” “내 밥그릇은 늘 60cm 거리에 있는데, 가끔은 90cm 거리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등등의 많은 명언들이 만화에 등장한다. 이 낙천적이고 즐거운 스누피는 분명히 우리가 새해를 맞이하는 한 해에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
어린이들이 그리는 그림은 풍성한 마음과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게 한다. 모든 분께 어린이 그림 같이 행복이 깃들기를 염원한다.
신 헬렌
<시인·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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