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발표된 아카데미상 최우수영화 후보작 가운데 ‘충돌’(Crash)이라는 영화가 있다. 감독상, 각본상 등 모두 6개 부문에 후보로 오른 이 영화는 백인 검사장, 중동계 가게 주인, 히스패닉 자물쇠 제조공, 흑인 TV감독과 자동차 강도 등 LA에서 섞여 사는 가지각색 사람들의 인생이 서로 충돌하면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엮어 인종갈등의 악순환을 실감나게 다뤘다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서 이처럼 인종편견을 주제로 다룬 영화에서도 한인과 아시안에 대한 할리웃의 인종편견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다. LA에 대한 영화니 아니나다를까 한인 부부가 등장하는데 남자는 뺑소니차에 치어 응급실에 실려가면서도 아내에게 수표를 주며 “첵캐싱하라”고 시키는 돈밖에 모르는 아시안으로 나온다. 그것도 모자라 영화 끝 부분에 가서 그가 보트 피플을 불법 밀입시키는 인신매매자인 것으로 드러난다. 더구나 한인 부부는 흑인 등장인물이 운전하는 차에 치였다는 점밖에 다른 등장인물들과 연관성도 없다. 마치 다인종 사회에 끼지도 못하는 소외집단인 것처럼.
한편 지난해 미국 TV드라마에 비춰진 한인상을 취재(2005년 11월25일 보도)한 이후 지금도 이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데 ‘해군범죄수사국’(NCIS)이라는 CBS 드라마는 지난 1월24일 방영된 에피소드에서 해병 군인들과 국제결혼한 한인 여성 2명이 살해되고 다른 1명이 실종된다는 이야기를 다뤘다. 수사과정에서 처음에는 ‘선’이라는 여성이 애정이 없으면서도 미국에 오기 위해 결혼했고 남편을 상습 폭행한 것으로 드러나는데 결국에는 여성 3명과 한 한인타운 업주가 모두 미국인들 사이에 섞여 살다가 폭탄테러를 계획하는 북한공작원인 것으로 밝혀진다. 약 1,700만명이 시청한 이 에피소드는 한국과 한인에 대한 나쁜 편견은 모조리 소화해준 셈이다.
미디어 관계자들은 이처럼 TV, 영화에서 아시안들이 산발적으로 등장할 때에는 부정적으로 묘사될 때가 많은데 그러나 아시안 배우가 주역을 맡거나 고정 출연할 때 비로소 ‘그레이 아나토미’의 샌드라 오나 ‘로스트’의 김윤진, 대니얼 김처럼 깊이 있고 긍정적인 캐릭터가 나올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인 사회에서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진출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지만 젊은 극작가들과 배우들의 연예계 진출을 격려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런 배경에서 볼 때 샌드라 오가 최근 한인 최초로 골든 글로브상과 영화배우조합(SAG)상을 수상한 것은 대단히 의미 깊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가 2,000만명의 시청자를 자랑하는 인기 TV시리즈에서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리는 주연 스타로 인정받은 사실은 어쩌면 박찬호 등 운동선수들의 활약보다 미주 한인 사회에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번 시상으로 주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할리웃 스타로 떠오른 샌드라 오는 SAG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들어 보이며 “아시안 아메리칸 동료 배우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용기를 갖고 계속 빛나라”고 격려했다.
이제 우리도 미국 연예계에서 땀 흘리는 아시안 배우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운동선수들처럼 응원해줄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박세리, 박찬호 등을 계기로 한인 사회에 스포츠 열풍이 불었던 것처럼 학부모들도 의사와 변호사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연예계 진출을 꿈꾸는 자녀들을 무조건 반대하지 않는 자세를 가지면 하는 바람이다.
우정아
특집1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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