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오피니언란에 기고된 ‘나이 세기, 나이 잊기’를 읽으며 은퇴와 나이와는 상관이 없었다는 글은 중년의 의식 세계를 다시 전환시키는 좋은 계기가 됐다. 나 역시 50을 넘어선 중년의 나이로 직업에 다시 도전을 해야 하나 하는 큰 도전에 망설였었다.
결혼 전 한국에서 외국 항공사에 근무하다가 미국으로 이민 온지가 근 26년이 되었다. 이민 온 직후 다시 그 항공사에 근무하게 되었으나 큰애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그 직장을 접었다. 근 20년을 넘게 근무하던 곳을 떠날 때의 아쉬움과 오랜 경력의 대가인 베니핏을 뒤로 할 때 많은 주위의 반대가 있었다.
자식들의 사춘기는 누구나 겪는 것이고 잠시 후엔 지나가는 것인데 그것으로 내려놓는다고들 했다. 하지만 난 이 길을 선택했다. 정말 큰애는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춘기의 방황을 멈추었으나 직장에 다시 되돌아 갈 수가 없었다. 이제 큰애는 대학을 마쳤고 둘째는 대학 2학년에 재학중이다. 그때 큰애의 사춘기 방황이 은퇴를 앞당기게 해줌에 감사해야 할지.
너무나 많이 나태해지고 도태되어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중년의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직장을 다닐 때는 핸드백에 항상 사전을 넣고 다니며 찾아보고 공부하며 배우려는 마음으로 넘쳤는데 언제부터인가 내 주위에 사전이랑 책들이 멀리 놓여 있었다.
언젠가 스테판 쥴란의 ‘2막’(Second Acts)을 읽으면서 나의 인생을 리모델링 했었는데 난 지금 제3막을 시작하려고 한다. 얼마전 용기를 내어 다시 항공사에 이력서를 내었다. 입사 통보를 받았다. 오리엔테이션 첫날 나를 포함 3명의 외국인 신입사원은 우리 큰애보다 두세 살 어리고 많고의 정도였다.
그 결과 나를 중견사원인 줄 알고 깍듯이 인사를 하는 바람에 나 역시 신입사원이라고 해명 아닌 해명을 했다. 자식과 같은 젊은 신입사원과 동등한 자리에 앉는 나의 마음은 좀 부담스러웠으나 그 생각은 곧 사라지고 닫혀진 나의 의식세계를 완전히 탈퇴할 수 있었다.
직원 휴식 라운지를 소개받는 순간 거기엔 나보다 10세 정도 많은 중년의 남녀사원들이 있었다. 그들도 나처럼 자신이 하는 일을 참으로 사랑했고 계속 일하고 싶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연령에 제한되어 도전할 수 없는 현실의 아쉬움 속에서 50이 넘는 중년에 다시 도전을 받아준 나의 사랑하는 직장에 감사하며 제3막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미국에 사는 한인 모두 나이에 구애받지 말고 새 삶에 도전해 보길 빈다.
미셸 박/ 하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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