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여름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왔을 때 현관 옆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 작은 화단에는 애리조나답게 알로에 두 뿌리가 자리잡고 있었다. 자갈밭에 알로에만 있으니 썰렁해 보여서 화단에 꽂는 무지개 색깔의 바람개비를 샀다.
우리 세 식구를 생각하며 산 것은 아니었는데 4개는 많고 복잡할 것 같아 3개를 샀다. 한여름 화씨 12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 탓에 하루종일 에어컨을 켜고 문을 닫고 살았지만 부엌 창 밖으로 보이는 바람개비가 돌면 바람이 부는걸 알 수 있었다.
그럭저럭 해를 넘기고 잘 돌던 바람개비들 중 하나가 부러지고 말았다. 그러자 아들 녀석이 화단옆 자기 키만한 가로등 기둥에 뚫린 구멍을 발견하고는 거기에 꽂아놓으니 하루종일 바람개비가 도는 것이었다. 보름전 교통사고가 크게 나서 일도 못하고 통원치료중인 나는 밥먹고 약먹고 잠자는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게 되었다.
문득 창밖에 쉬지 않고 도는 한 개의 바람개비를 보다가 4개월 째 직장 때문에 혼자 떨어져 있는 남편이 생각났다. 없네, 모자라네 해도 풍족하진 않지만 가지고싶은 것, 하고싶은 것 다하고 사는 아들. 다쳐서 쉬고 있지만 그래도 ‘백조’생활을 하는 나. LA에서 하숙비와 용돈조금 빼고는 고스란히 보내며 열심히 일만 하는 남편.
미풍에 가끔씩 도는 2개의 바람개비와 혼자 떨어져 쉬지 않고 도는 한 개의 바람개비를 보며 우리 가족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남편 바람개비가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서 몸이 좀 나아지면 새 막대기를 끼워 화단으로 옮겨야겠다고 궁리를 해본다.
임은형/애리조나 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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