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민주주의’의 거창한 명분을 내걸고 출발했던 주민의회가 출범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동네 유지들의 패거리 싸움터’로 전락하고 있다. 특히 선거일 3일을 앞두고 ‘느닷없이’ 선거를 무기한 연기해 버린 ‘윌셔센터-코리아타운 주민의회’(WCKNC)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주민의회’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변질, 왜곡되어 가고 있으며 주민의회가 내세우는 ‘민의 전달과 반영’이라는 슬로건이 얼마나 허울뿐인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가를 절감하게 된다.
16명의 대의원을 선출하는 이번 선거는 애당초 지역 주민의 의사를 대변해줄 대의원 선출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동떨어진 것이었다. 극소수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출마한 36명 후보 대부분이 ‘주민의회 대의원’으로서의 봉사를 하겠다는 다짐보다는 이번 선거전을 주도하는 L씨와 H씨의 대리전에 끌려나온 용병과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전을 배후에서 주도하고 있는 한 사람인 L씨는 현 주민의회 의장인 K씨의 후광으로 주민의회 의장직에 사활을 걸고 있고 H씨는 지난번 선거에서 L씨에 패한 설욕을 하겠다는 전의로 가득 차 있다는 전언이고 보면 선거전은 양측의 자존심 싸움에 다름 아니었던 셈이다.
양측이 벌인 선거캠페인은 처음부터 ‘패거리 싸움’을 위한 소위 ‘패키지’ 방식 선거전이었다. 캠페인 전단을 보면 이같은 양상이 확인할 수 있다. 지역 주민대표, 사업체대표, 비영리단체, 일반대표 등으로 출마한 36명의 후보자를 이들은 ‘우리편’과 ‘상대편’으로 갈라 ‘우리편’ 후보는 크고 굵은 글씨로 새겨 유권자들에게 ‘우리편’ 입후보자를 확실히 각인시키고 있다. 이번 선거는 개별 대의원을 뽑는다기 보다는 주민의회 의장 당선을 노리는 H씨와 L씨의 표대결이었던 셈이다.
후보자가 H씨 패거리 소속인지 L씨 패거리 소속인지가 이번 선거 투표의 유일한 잣대였다는 것이다. L씨를 지지한다면 혹은 H씨를 지지한다면 ‘우리편’ 후보자 모두에게 한꺼번에 투표해 달라고 유권자에게 요구하고 있었던 셈이다. 후보 개개인의 자질이나 자격, 또는 정치적 성향, 봉사하려는 마음가짐 등 유권자 선택 기준은 처음부터 이번 선거에 끼여들 여지조차 없었다.
‘이의제기(challenge)가 있었다’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선거가 연기된 배경에는 이같은 ‘패거리 싸움’식 캠페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선거가 연기 사실도 연기 사유도 통보 받지 못했다는 입후보자 A씨는 “이의제기가 있었다, 주차장이 부족하다, 투표장소가 협소하다는 식의 이유는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판세가 불리하다고 판단한 쪽이 선거연기를 무리하게 밀어붙인 것 아니겠느냐”고 냉소했고 B후보는 “한인회장 선거 때문이 아닌가. 선거가 한인회장 선거 때까지 연기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조소했다. 주민의 60%를 차지하는 히스패닉계가 단 한 사람도 ‘괴상한’ 주민의회 선거를 보면서 ‘주민의회’가 오히려 주민들의 의사를 왜곡, 오도하고 있지는 않은지 또 하나의 ‘감투기구’로 변질되고 있지 않은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주민에게 권력을 돌려주겠다’(Neighborhood Empowerment)며 출발한 주민의회가 초발심을 되찾아야 할 때다. 아울러 ‘동네 패거리 싸움’에 끌려 다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시수권국’도 주민의회 운영 전반을 처음부터 재검토해 봐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김상목
사회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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