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어떤 신문이 이슬람의 창시자 마호메트의 풍자만평을 게재한 것이 도화선이 되어 전 세계가 큰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슬람교도들의 폭력적 시위가 큰 산불처럼 타오르고 있고 유럽의 언론들은 이에 질세라 그것을 일제히 게재하여 싸움을 크게 확산시켜 놓았다.
물론 이것은 결코 단순한 싸움이 아니다. 이스라엘과 아랍의 싸움, 중동과 유럽의 싸움, 무엇보다도 문명충돌의 마주 오는 두 기차인 기독교/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싸움으로도 인식되고 있다.
게다가 신앙의 자유 대 표현의 자유가 한판 승부를 겨루고 있다. 유럽 언론기관들은 “우리는 비록 신에 관한 것이라 할지라도 제한 받지 않고 표현할 자유를 가진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이번 싸움에 밀리면 과거 독재정권들에 의하여 제한 받던 언론자유가 이번에는 독재종교에 의하여 제한 받게 될 것이라는 논리이다.
그러나 이슬람교에서는 이 만평을 신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하는 절대신앙을 가지고 있다. 하물며 마호메트의 머리를 자살폭탄의 형상으로 그려 놓은 것을 보고 분노가 끓어오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이 종교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 충돌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두 자유의 본질과 그 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누구나 아는 대로 이 두 가지 자유는 민주사회에서는 인간의 기본권에 속한다. 미국의 헌법도 이 두 가지에 관해서 만은 이를 제한하는 어떤 법률도 제정할 수 없게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두 가지 자유가 서로 끊임없이 충돌할 수 있는 속성을 가진 데 있다. 종교는 금기사항 곧 신성성을 그 본질로 하고 있고 그만큼 성역(聖域)의 절대화를 생명으로 삼고 있다. 이는 언론의 자유를 허용할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언론들은 “알 권리”라는 이름 아래 이 같은 종교의 금기사항들을 파헤치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종교적 성역을 축소시키거나 완전 개방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달려든다. 여기에서 충돌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때에 종교와 언론이 폭력적 대응을 한다면 결국 너 죽고 나 죽자는 싸움으로 결판날 뿐이다. 이슬람교도들이 불을 지르고 자살폭탄을 사용해 보아야 자신들의 이미지만 나빠질 뿐이며 이슬람으로 들어가려는 문을 막아버리는 자해 행위가 된다.
그런 점에서는 언론도 마찬가지이다. 폭력성이 있는 표현으로는 종교의 버릇을 고치지 못한다. 게다가 언론자유라는 미명 아래 다른 사람이나 인종이나 종교의 명예에 먹칠하는 것은 전혀 언론의 바른 길이 아니다.
해법은 여기에 있다. 서로 죽고 죽이려는 싸움을 나도 살고 너도 살자는 상생적 방향으로 바꾸어야 한다. 언론은 종교의 종교됨을 존경하되 종교나 종교인의 독소조항에 대하여는 부드럽게 비판하는 한계를 지켜야 한다.
또 종교는 “큰 가르침“이라는 그 이름에 걸맞게 언론에 대하여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굳이 투쟁해야 할 언론자유의 독소조항이 있다면 평화적 비폭력 투쟁을 선택해야 한다.
종교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는 “부드러운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을 이루어야 서로에게 유익이 되며 인류 복지에도 기여하게 된다.
이정근
유니온교회 담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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