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 대교구의 로저 마호니 추기경은 최근 연방하원을 통과한 이민개혁 법안에 정면 반발, 의회가 이 법안을 최종 승인해도 LA 대교구 내 신부들은 이를 따르지 말 것을 지시하겠다고 했다. 그 법안은 교회와 자선단체들의 경우에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법적 신분을 의무적으로 확인해야 하고 이를 어길 경우 처벌한다는 조항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를 보고 오랜만에 미국안에 리더다운 말을 하는 사람이 나타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제일의 가치로 내세운 부시 행정부는 테러를 막기 위해서는 다른 모든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자세로 임해 왔다. 전 세계를 향해 우리를 돕든가 아니면 적이 되든가 양자택일을 하라는 선언을 하고 전쟁도 일으켰으며, 외국인의 미국 입국을 힘들게 하고, 의심이 가는 사람은 법적 절차 없이 도청도 하고 구금도 했다.
세계의 분쟁지역과는 뚝 떨어진 지리적 조건 아래 평화를 당연한 생존의 권리로 알며 지냈던 미국인들에게 9.11이라는 정면 공격은 실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에 미국인들이 심리적으로 움츠러들어 방어적이고 호전적인 자세를 보임은 자연스런 인간적 반응이랄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민심에 부시 행정부의 강경책들은 강한 어필을 하여 부시는 재선에 성공했다.
그래서 야망이 있는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국민의 불안감을 없애기보다는 그에 편승하여 점수 하나라도 더 얻어 보려 전전긍긍하며 부시 행정부가 내놓는 일련의 강경책들에 동조해 끌려갔다. 이러한 배경 아래 이민개혁 법안은 초강경 반이민 정서를 담게 되었는데, 그 법안이 연방 하원을 통과했던 것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약간의 임시적인 안전을 얻기 위해 본질적인 자유를 포기하는 사람은 안전도 자유도 가질 자격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부시는 약간의 임시적인 안전을 얻기 위해서라면 자유도 포기할 수 있어야 애국자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이란 나라와 국민이 소중히 여겼던 인권이나 개방성 같은 가치들도 안전을 위해서라면 포기해야 된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미국은 누가 뭐래도 춥고 배고픈 사람들을 받아들여 기회를 주는 세계 최고의 이민의 나라였다. 자선단체와 각양각색의 교회들은 누구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 도움을 펼치는 것을 자신들의 임무의 하나로 여기며 새로운 이주자들을 도와온 전통이 있었고, 그것이 오늘의 미국 사회를 강하게 받쳐준 다양성을 키운 힘의 하나이기도 했다. 그것을 포기하라는 정치인들의 요구에 마호니 추기경은 “No!” 하고 나섰다.
불안해하는 국민들 앞에 나서서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자유롭고 너그러우며 여유로운 나라라는 사실을 수호할 수 있을 때 가장 강력한 나라로 남으며, 나는 그것의 수호를 위해 목숨까지도 걸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리더는 하나도 없다. 미국은 그러한 리더를 필요로 하건만.
마호니 추기경의 “No!”는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미국이 지켜야 할 가치의 수호를 위해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리더가 각계각층에서 나와 국민들의 왜소해진 마음을 넓혀주고 메마른 가슴에 온기를 불어 넣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에 9.11을 거친 미국이 더욱 성숙해진 모습으로 자유의 소중함과 인권의 수호를 외칠 수 있을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어떤 테러범도 미국을 쓰러뜨리지 못할 것이다.
김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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