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은퇴한 전문직 종사자다. 그러나 은퇴했을 당시 예상과는 달리 지난 수년간 그는 풀타임으로 일할 때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렸다. 사상 유례없는 주택 경기 호황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세컨드 홈으로 사기 시작하다 값 오르는 재미에 하나 둘씩 늘려가다 보니 이제는 10채가 넘게 됐다. 샀다가 적당히 고쳐 시장에 내놓기만 하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땅 짚고 헤엄치기’라더니 이렇게 쉽게 돈이 벌리는 줄은 몰랐다.
그게 작년까지 이야기다. 올 들어서는 사정이 좀 달라졌다. 한 달이 넘지 않고 팔려나가던 집들이 이제는 6개월이 지났는데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한 때 가장 인기가 높던 코리아타운 인근 주택마저 그렇다. A씨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한인들이 하나둘은 아닐 것이다.
주택 경기의 둔화는 전국적인 현상이다. 지난 주 상무부 발표에 따르면 미 신축 주택 판매는 2월 들어 10.5%가 줄어들었다. 9년래 최대 폭이다. 그 동안 거래가 왕성했던 북동부 지역에서는 13%, 서부 지역에서는 30%나 폭락했다. 가격도 정점을 기록했던 작년 말에 비해서는 5.5%, 1년 전에 비해서는 2.9%가 내려갔다.
신축 주택 시장은 기존 주택 시장에 비해 규모가 작지만 경기 변화에 민감하다. 거래가 이뤄지지 않거나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며 팔려고 내놨다가 ‘세일’ 사인을 거두는 개인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기존 주택과는 달리 업자들이 소유하고 있는 신축 주택은 하루라도 빨리 파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팔리지 않으면 가격을 낮춘다. 요즘 새 집은 대부분 ‘인센티브’라고 해 무료로 부엌을 업그레이드하거나 HDTV를 주는 등 사실상 수천 달러의 할인 혜택을 주고 있다.
주택 경기가 뚜렷이 둔화되면서 “이민자 때문에 주택 시장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대신 “경기가 둔화되고는 있으나 이는 이상 과열에서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라는 주장과 “본격적인 부동산 불황의 시작”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아직까지는 전자가 다수 의견이다. 그러나 사상 최대 규모의 부동산 버블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을 것을 예고하는 조짐은 하나 둘이 아니다. 우선 나날이 늘어나는 주택 재고다. 2월말 현재 팔리지 않은 집은 54만8,000채로 사상 최대다. 이를 다 팔려면 6.3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1월의 5.3개월에서 한 달이 늘어난 것이다. 주택 경기의 선행지수인 주택 건설회사 주가도 불과 6개월 사이 반토막 난 곳도 여럿이다.
여기에 때맞춰 금리는 계속 오르고 있다. 지난 주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가 단기 금리를 4.75%로 15번째 올리자 모기지의 기준이 되는 10년 만기 채권 수익률도 수년래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설상가상으로 금년은 변동 금리를 선택한 사람들의 2조 달러 규모의 모기지 금리가 최고 40%까지 상향조정되는 해다.
2005년에 새로 집을 산 사람들은 보통 2%만 다운했다. 43%는 아예 한 푼도 내지 않았고 25%는 소위 ‘이자만 내는 모기지’를 선택했다. 집값이 조금만 내려도 이들은 집을 붙잡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최근 주택 구매자의 25%가 실수요자가 아닌 투자 목적으로 산 사람들이란 통계도 있다. 이들 또한 주택 경기가 나빠지면 기다리지 않고 내다 팔아 사태를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앨런 그린스팬 전 FRB 의장이 주식 시장의 버블 위험을 경고한 것이 1996년이다. 그 후 정작 거품이 터지는데 4년 걸렸다. 작년 여름 은퇴를 앞 둔 그가 이번에는 부동산 시장의 거품 가능성을 지적했다. 주식 시장의 전례를 보면 아직 3년은 여유가 있는 셈이지만 문제는 버블이 그렇게 기차 시간표처럼 날을 정해놓고 터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집을 산 사람들, 사려는 사람들의 깊은 숙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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