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정
정리에 무심한 남편이 유독 깔끔을 떨며 정리를 하는 건 우리집 앨범이다. 우리 가족의 삶의 흔적들을 될수 있는 한 시간의 흐름순으로 앨범 속에 저장하기 위해선 순서를 무시한채 함부로 꽂혀 있는 단 한 장의 사진도 용납하지 않는다. 간혹 굴러 다니는 사진이 발견되거나, 누군가 예전에 찍었다며 시간 지난 사진을 건네주기라도 하면, 나와 남편은 그 때의 날짜를 기억해 내느라 머리를 쥐어짜야 하고, 다행히 어렴푸시 기억해 내기라도 한 연후엔 어김없이 제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그 사진으로 인해 이미 자기 영역을 폼나게 잡고 있던 이후 사진들은 가차없이 뒤로 밀려야만 하는 수난을 당한다.
그토록 사진 정리에 깔끔을 떠는 남편이지만 얼마전까지만해도 요즘 세상엔 귀하달것도 없는 디지털 카메라나 캠코더같은 것들을 장만하는 것을 영 내켜하지 않았다. 단지 보며 즐기는 것을 떠나서 그토록 시간순의 정렬을 고집하는 사람이 시간순은 물론, 거의 영구적인 저장을 천명하는 최첨단 매체를 극구 사양하는 것이 하도 이상해서 그 이유를 넌지시 불어볼라치면 대답이라는 것이 ‘그냥 싫어서!’ 이다. 대답이 너무 싱겁고 더 이상 물어볼 맛이 안나서 그냥 그렇게 넘어가곤 했지만, 애들 학교 행사 때나 나들이를 나와서 팔랑거리고 뛰어 다니는 아이들을 향해 열심히 렌즈를 들이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내 입속이 남편에 대한 불만으로 굼시렁대곤 했다. 아니, 아이들 한창 이쁠 때 안찍어 두면 언제 찍냐구, 느이들 이럴때도 있었다~ 하고 찍어두면 좀 좋아….
그러다보니 내 나름대로의 방법을 고안하기에 이르렀다.
내 마음의 픽쳐. 아무리 날고 기는 최첨단 영상매체가 있다해도 어디까지나 준비된 시간과 장소를 요하기 마련 아닌가. 말하자면 순간포착에는 기동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아무리 사진첩이 추억으로 도배를 해 놓았다 한들 진짜 추억의 액기스들은 아닌 것이다. 어느 정도 편집된 전시용 추억들이 더 많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진짜배기 추억의 사진들은 노상 지니고 있는 내 마음 속 켜켜에 저장되어 있다.그것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갈피를 넘기지 않아도 된다. 그저 마음만 먹으면 다이렉트 억세스가 가능한 살아 있는 활동사진으로 내게 다가온다. 그 이상 좋은 최첨단 기능이 세상천지에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엄마! 나 똥 다눴어!
작은 아이가 목청높여 날 부른다. 늘 종년 부리듯 나를 부리면서 그렇게 당당할 수가 없는 아이다. 뒤를 닦아주려 들어 가는데 일을 보고 난 후 그 시원함을 즐기며 다리를 까딱거리고 있는 아이의 맹차앙한 얼굴이 그렇게 이쁠 수가 없다.
찰칵~. 내 마음 속 어딘가에 셔터소리가 들린다.
멀지 않아 훌쩍 커버린 이 아이가 순간 낯설어질 때 난 아마 이 사진을 꺼내 음미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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