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정<한국학교 교사>
조이는 내 옆집에 사는 여자다. 훤칠한 키에 서늘한 눈매를 가진 조이를 처음 본 건 이사를 온 첫날이었다. 이삿짐을 부려놓자마자 누군가 문을 두드리기에 열어보니 그녀가 서 있었다. 손수 구웠다며 따끈따끈한 파이를 들고와선 가뜩이나 영어가 짧은 내게 어찌나 길고도 빠른 영어로 화끈하게 웰컴을 하던지, 그녀가 돌아간 후에도 한동안 정신이 다 얼얼했다.
애정표현에 있어 화끈과 거리가 먼 내게 조이는 그렇게 화끈하게 다가왔다.
그녀에겐 아들이 둘 있다. 두 아이 모두 자폐 아이다. 여간해선 자기 세계에서 빠져 나오려하지 않는 아이들때문에 그녀는 종종 파티를 연다. 파티의 찰랑거리는 흥겨움이 두 아이의 닫힌 문을 흔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녀 나름의 배려인걸 나는 안다. 그 아이들의 닫힌 문이란건 참으로 희한해서 열리는가 싶다간 이내 닫히고, 때로는 그 상태에서 한동안 꿈쩍도 하지 않는다. 늦은 나이에 아이를 가진 탓에 이미 사십 중반인 그녀에겐 7살, 5살의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두 아들이 너무도 버겁다. 그 버거움으로인한 스트레스때문에 벌써 폐경기의 증상이 온다는 그녀의 얼굴에선, 그러나 ‘포기’라든가 ‘절망’의 기미를 도무지 읽을 수가 없다.
그런 여장부 조이에게도 걱정은 있다. 공립학교에 적응할 수 없는 아이들때문에 고액의 학비를 지불해야하는 학교를 보내야 하는 형편인데다 그 외에 병원비며 과외비, 기타 오로지 아이들로 인한 지출이 실로 만만치 않기때문이다.
그녀는 무척 알뜰하다. 특히나 자기 자신에 대해선 더욱 그렇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과감하고도 서슴없이 알뜰을 포기한다. 그런 그녀의 씀씀이가 은근히 불안해져서 “조이, 경제전선에 이상은 없는거니?”라고 넌지시 물어본 적이 있다. 대답은 물론 Yes. 이상이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대답.
“수, 장래의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 그저 난 지금 내가 해 줄 수 있는거라면 뭐든 아이들에게 퍼 주고 싶을 뿐이야…”
조이가 살아가는 방식이 합리적인지 아닌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건 차치하고라도 조이는 내게 그가 살아가는 방식으로 사랑의 또 다른 정의를 내려준다.
사랑은 낭비. 그렇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낭비하는가. 사랑하지 않으면 어림도 없는 일인데 말이다.
사랑한다면 주기 마련이다. 그것도 누르고 넘치도록. 주게되지 않는건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 그랬던가.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이라고. 하긴 가장 귀한 것 앞에 나머지 것들은 빛을 잃는 법이니까 .
조이가 아이들과 함께 돌아온 모양이다. 목소리 큰 그녀의 목소리가 담장 너머 들려오면 고여있던 내 시간도 함께 출렁이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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