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숙<방송인>
여름이 됐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게되는 것은 아이들이 방학을 하면서부터 입니다. 한 학년을 마치고, 긴 시간의 휴식을 당당하게 취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것처럼 마지막 수업날 파티와 함께 시작된 흥분은 꼬박 사흘을 걸르고 나서야 조금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그나마 올핸 큰 아이가 방학한 다음날 서울로 떠났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음 집안이 떠나갈 법도 했을 겁니다. 영어로 떠드는 것은 왜 또 그렇게 시끄러운지요. 서로 먼저 의견을 마치겠다고 목청을 높이면서 으스대는 꼴하며, 형 아우를 막론하고 일단 게임을 시작하면 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것도 가관이고, 행여나 엄마에게로부터 소홀한 대접을 받지 않으려고 곁에서 갖은 애교와 맞장구를 쳐대는 모습이라니. 계절은 또 그런대로 덥다쳐도 가족들의 맞장뜨는 시간이 엄청 많아져서 요즘 집안 실내온도는 보통 80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주 괜찮은 여름의 시작입니다.
늘 자기들의 보스인 것처럼 막강한 힘을 휘둘렀다 생각했는지 누나가 여행을 떠났다는 사실에 처음 두 꼬마들의 반응은 야호,였습니다. 자기들끼리 신나게 컴퓨터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고 엄마대신 잔소리 하는 사람도 없어졌다는 거지요. 보통 아침에 깨우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웬걸 자발적으로 일어나 어느 틈엔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겁니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던 게임을 마저 끝내야 한다고 딴에는 열중하는 모습에, 질서는 있어야 하니 야단을 쳐야 할는지 아님 이제 막 방학이라는 자유를 앞에 두고 신나서 어쩔 줄 모르는 걸 그냥 봐줘야 할는지를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누나 없이 두 사내 아이들만의 의기투합을 방해할 수도 없고 말입니다. 게임도 지쳤는지 집안을 서성거리다 책을 붙들고 한동안은 앉았습니다. 시간을 재달라고 아우성을 쳐서 어휴 벌써 삼십분이나 읽었네, 칭찬을 해줬더니 신이 나서 또 다른 책을 펼칩니다. 그것도 잠깐, 뒷마당으로 나가더니 호스에 물을 틀고 여기저기 공중을 향해 물 뿌리기를 시작합니다. 두 녀석이 함께 겅중겅중 뛰어다니며 서로 온몸에 물세례를 베풀고, 집에 들어와선 젖은 옷을 벗어 던진 채 알몸으로 장난을 치며 방마다 휘젓고 다닙니다. 막내는 배가 출출해 졌는지 쥐가 풀방구리 넘나들 듯 팝콘이며 주스를 꺼내다가 늘어놓고 형과 나눠먹는 모습도 보입니다. 제발 늘어놓은 것 치울 순 없을까, 잔소리를 해대면, 나중에 할께요, 대답만 잘합니다.
사흘이 지난 오늘, 엄마 누나 언제 돌아오는 데요? 다음 주 화요일, 왜 심심하니? 응, 누나는 재미있는 놀이를 잘 생각해 내거든. 누나에게 말해줄까? 아니야, 아직 우리끼리 놀 수 있어요. 웬 자존심? 그래도 남자라는 건가 싶어 난 혼자 킥킥댑니다. 아, 바야흐로 이제 긴 여름이 시작되는 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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