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급 학교가 일제히 여름방학에 들어간 지난 주, 한인타운인 플러싱 한 가운데에 있는 JHS 189중학교에서 만난 신디 불거스(Cindy Burgos) 교장은 9월 새 학기가 매우 의미있는 학기라고 했다. 왜냐하면 한국어가 제 2외국어 과목으로 신설되기 때문이다. 이 학교는 새 학기부터 타인종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과목을 신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시간씩 교육하고 학점을 준다. 뉴욕지역에서 한국어를 제 2외국어로 가르치는 고등학교는 몇 곳이 있으나 중학교는 이 학교가 처음이다. 이 한국어반은 현재 ESL반을 가르치고 있는 이경희 교사가 맡을 예정이다.
플러싱의 샌포드 애비뉴와 147가에 있는 이 중학교에는 한인학생이 42%이고 중국계를 합친 아시안계가 52%이다. 그밖에 히스패닉 30%, 백인과 흑인이 각각 9%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제 2외국어로는 스패니쉬 뿐이었는데 이번 불거스 교장의 결단으로 한국어과목이 신설됐다.
이 학교에 한국어과목을 설치하기까지는 학부모 코디네이터인 최윤희씨의 끈질긴 노력이 컸다. 두 딸이 이 학교를 나온 최씨는 3년 전부터 학부모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고 그 전에는 한인학부모회 회장도 했다. 그 때부터 그는 한국어과목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영어교육을 강화해
야 한다는 학부모들의 심한 반대를 겪었다고 한다. 그는 구정과 추석 때 학생들에게 한복을 입혀 한국문화행사를 하고 스승의 날에는 스승을 위한 잔치를 하는 등 한인학생들의 이미지를 높이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2년 전 불거스 교장이 부임하자 그는 교장을 꾸준히 설득하여 한국어과목을 설치하게 된 것이다.
불거스 교장은 뉴욕에서 태어나 포담대학에서 정치학과 교육학을 공부했다. 평생 교사였던 그의 어머니처럼 그도 교사생활을 시작했는데 올해 44세로 교직생활 23년째이다. 맨하탄고교 교장을 거쳐 2년 전 이 학교 교장으로 부임했다.그 때까지만 해도 이 학교에는 문제아들이 많았고 폭행사건 등 학내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교장으로 부임하면서 학교가 딴판으로 달라졌다. 부임 첫 날, 학생이 문제를 일으키자 그는 경찰을 불러 연행케 했다고 한다. 보통 학교에서 문제가 생겨도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질 것을 두려워해서 쉬쉬하는데 그는 달랐다. 이렇게 강력하게 대처하자 문제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불거스 교장의 남편은 뉴욕의 경찰관이다. 그래서 문제학생들은 불거스 교장 앞에선 더욱 꼼짝을 못한다.
여러 인종의 학생이 섞여있는 이 학교에서 푸에로토리칸인 불거스 교장은 인종적으로 편견 없이 매사를 처리하는 것으로 소문나 있다. 한번은 한인 남학생이 히스패닉 여학생을 때린 사건으로 경찰이 출동했는데 불거스 교장이 사건의 전말을 들어보고 이것은 폭행이 아니라 실수로 여학생이 맞은 것이라고 설명하여 경찰을 되돌려보낸 일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학교의 규율이 잡히면서 교내 문화가 확 달라졌다. T-셔츠 차림으로 학교에 오던 교사들의 옷차림이 정장 차림으로 바뀌었다. 학교 주변에 어지럽게 나뒹굴던 쓰레기도 사라졌다. 입에서 입을 통해 이 학교의 소문이 나면서 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한국에까지 좋은 학교로 소문이 나서 한국에서 온 유학생만 20여명이 재학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거스 교장은 한인학생들이 가장 많은 이 학교에 한국어과목이 설치되면 타인종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움으로써 한인학생과 한국문화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일부 고교에서 이미 한국어과목을 가르치고 있으므로 이 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면 고교에서 연속적으로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준비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어과목이 개설되면 불거스 교장도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는 LA에 있는 한국어교육진흥재단의 초청으로 내년 7월 4일부터 10일간 한국 방문을 예정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 한국에서 한국말을 쓰겠다고 즐거워 했다.
“한인학생들은 대체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한인 학부모들은 자녀 교육에 매우 열성적이고 학교에 대한 참여도도 높습니다” 한인학생이 다수인 이 학교의 불거스 교장은 한인에 대해 매우 긍정적 평가를 한다. 그러면서 한가지 당부는 빠뜨리지 않는다. 즉,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학교를 멀리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이 학교에서는 학생이나 학부모나 애프터 스쿨과 ESL반에서 얼마든지 영어를 공부할 수 있으므로 학교를 편안하게 생각하고 언제든지 문의해 달라는 것이다. 또 학부모 코디네이터를 통해 학교와 통신을 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불거스 교장은 한국어과목이 널리 보급되면 한국어가 불어나 스페인어처럼 많은 인종이 사용하는 제 2외국어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오는 학기에 우선 한국어과목을 실시해 보고 수강 희망자가 많을 경우 한국어반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이기영 본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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