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의 식탁은 더 편리하고, 더 빠르며, 더 자극적인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그 중심에는 ‘초가공식품’이라는 현대식품산업의 산물이 존재한다. 이른바 초가공식품은 이제 단순히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같이 마주하는 일상의 일부가 되었고, 이는 곧 건강을 잠식하는 조용한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2010년 미국에서 약 9,3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들이 섭취하는 전체 칼로리의 57.9%가 초가공식품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수많은 국가에서 유사한 결과가 반복되었고,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급속한 산업화와 1인 가구의 증가, 편의 중심의 소비문화는 초가공식품의 소비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문제는 많은 이들이 초가공식품에 대한 정확한 인식 없이 이를 무심코 섭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진료실에서 환자들에게 식습관을 물어보면 “초가공식품은 잘 안 먹어요”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경우가 많지만,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자주 과자를 먹거나, 즉석밥이나 레토르트 국으로 식사를 때우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이는 초가공식품이 겉으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식품처럼 보이되, 본질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식품은 그 가공 정도에 따라 자연식품, 가공식품, 초가공식품으로 나뉜다. 자연식품은 최소한의 손질만 거친 식재료이며, 우리가 흔히 ‘건강식’이라 부르는 과일, 채소, 생선, 정제되지 않은 곡물 등이 여기에 속한다.
가공식품은 자연식품을 일정 부분 가공해 보관성과 맛을 높인 것으로, 통조림, 치즈, 신선한 빵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초가공식품은 이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원재료를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형시킨 식품이다. 감자에서 전분을 추출해 만든 슬러리로 재구성한 감자칩, 시리얼, 가공육, 치킨너겟, 핫도그 등이 그 예다.
문제는 이러한 초가공식품이 전통적으로 ‘건강식’이라고 여겨졌던 일부 한국 음식들 속에도 스며들어 있다는 점이다. 어묵은 생선살에 밀가루, 전분, 설탕, 방부제 등을 섞어 대량 생산되는 경우가 많고, 떡 역시 쌀 대신 전분이나 첨가물이 주재료가 되곤 한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고추장, 간장, 된장은 발효 성분이 거의 없는 분말 형태로 유통되며, 편의점에서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즉석 국과 찌개, 도시락류는 방부제와 인공 조미료로 가득 차 있다.
초가공식품은 값싸고 빠르며, 조리와 보관이 간편하다는 점에서 현대인에게 유혹적이다. 감칠맛 나는 향미와 자극적인 맛은 소비자의 입맛을 빠르게 사로잡는다. 하지만 이러한 편의성은 결코 무료가 아니다. 초가공식품에 포함된 인공첨가물, 정제된 탄수화물, 인공 감미료는 활성산소 생성을 촉진하고 세포 손상과 만성 염증을 유발한다. 텔로미어의 길이를 단축시켜 노화를 앞당기며, 장내 미생물 생태계까지 교란시켜 대사 이상을 초래한다. 최근의 연구들은 초가공식품의 잦은 섭취가 당뇨병, 심혈관 질환, 대장암, 유방암, 비만, 우울증, 심지어 총사망률 증가와도 관련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쯤 되면 초가공식품은 단지 건강에 좋지 않은 ‘정크푸드’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무심코 받아들이는 식문화 전반에 대한 경각심을 요구하는 존재다. 개인의 식습관 변화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사회적 차원의 전환이 필요하다. 식품표시제도의 개선, 초가공식품에 대한 대중 교육 강화, 그리고 식품산업의 책임 있는 생산문화 조성이 병행되어야 한다. 특히 아이들을 위한 급식과 교육현장에서는 자연식 중심의 식단이 보다 적극적으로 도입되어야 한다.
물론, 바쁜 일상 속에서 초가공식품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먹는 음식이 곧 우리의 건강과 노화 속도, 삶의 질을 결정짓는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하루 한 끼라도 조금 더 신경 써보는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초가공식품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첫걸음은 ‘무엇을 먹는지’에 대한 자각에서 시작된다. (213)757-2080 임영빈 박사
<임영빈 박사 K-day PACE 주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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