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문자<수필>
어느 날 저녁무렵, 푸른 눈의 노신사 한 분이 우리의 모텔에 체그 인을 하였다. 그는 우리를 보고 Korean이냐고 물어보더니 “돈 떨어져, 신발 떨어져, 길거리를 헤메며......”라고 당장에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의 노래가 끝났을 때에 우리 부부는 두 손을 가슴에 대고 오랫동안 감격하였다. 얼마만에 들어보는 노래였던가. 한국전쟁 당시에 많이 부르기도했던 그 노래는 거의 잊혀져 있기도 하였다. 당연히 어디에서 그 노래를 배웠는지 물어보았다. 그 분은 한국전의 참전용사였던 것이다. 모든 것이 부서지고 희망이 깨어진 곳에서 그러한 노래를 부르는 한국인들은 참으로 실제적인 국민들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마을에 내려가면 언제나 국수를 먹여보냈던 한국인들이 너무나도 좋았다는 것이었다. 전몰 용사를 기념하는 Memorial Day의 퍼레이드에 참석하고 집으로 가는 길이라던데 그 분도 아마 옛 생각에 젖어 있었나보다.
과연 우리는 슬픔과 고난을 대하는 태도가 남다른 것이 사실이다. 당당한 태도로 시침이를 뚝 따고 ‘각설이 타령’을 부르던 걸인들도 그렇고, 결혼식의 행렬보다도 더욱 화려하게 울긋불긋 만장을 휘날리며 지나가던 장례행렬도 그러하고, 또 밤새워 먹고 마시며 화투를 쳐대는 문상객들도 그러하였다. 우리는 오랫동안 슬픔도 기쁨도 함께 섞어서 흘려보내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전에 우리는 참으로 가난하여서 남의 나라 사람들과 무엇을 비교할 것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우리의 기백은 살아있었으며, 또한 ‘우리의 나아갈 길은 오직 하나 밖’에 없었음으로, 사막이든 외로운 타국이든 혹은 고국에 남아서이든, 모두 모두 열심히 살아가기로 결심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세월은 이제 지나가고, 우리는 본다. 번쩍이는 한국제 새 차와 다른나라에 팔려간 우리의 헌 차들이 세계를 누비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한국의 낭자군들이 Golf의 세계에서 무시못할 세력이라는 것을. 그런가하면 용감한 우리의 아이들이 배낭을 메고 육대주를 누비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아마도..... 무의식 속에 깊숙히 감추어 둔 하나의 강열한 욕망; 일등을 향한 말릴 수 없는 우리의 숙명과도 같은 욕망을 오랫 동안 남몰래 키우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것이 마침내 우리의 유전자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민을 와서도 우리끼리 전국 체육대회를 치르는가 하면, 관전이라기 보다는 순전히 응원을 하기위해서 지구의 반대쪽에서, 전혀 상관없는 장소에서, 일사분란하게 스크린을 보며 응원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한국에 있든지 타국에 있든지, 월드 컾의 선수들을 각처에서 텔레파시를 보내듯 응원하는 민족은 아마도 한국인 밖에는 없을 것이다. 얼마나 신기하였으면 미국의 ABC에서 중계를 하다말고 LA교민의 응원모습을 보여주었겠는가. 가만히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문득, 우리는 정말 못말리는 우수 민족이라는 확신도 생긴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빈자의 대열에서 확실하게 부자 나라의 대열에 들어서게된 것이라면..... 이제야말로 우리의 잠재력을 어떻게 발휘할 것인가 고민하자. 쓰레기속에서 피워낸 장미를 어디에 꽂을 것인가. 그리고 진짜 부자들은 어떻게 정치를 하며, 어떻게 후손들을 키우며, 인생은 어떤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도 진짜인가. 우리의 소망은 과연 무엇인가. 이제야말로 어쩐지 승산이 있을 것만 같은 예감으로 우리의 ‘끼’를 모으고 정신을 집중할, 그 때가 마침내 온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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