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정<한국학교 교사>
언젠가 슁글스라는 몹쓸병에 덜컥 걸려 버렸다. 예고나 사전 지식도 없었으니 덜컥이랄 밖에. 출산 후 조금만 무리하면 뻐끈하던 엉치뼈 언저리가 욱신거리기에 그저 또 그런가부다했다. 그래, 그 자리에 파스만 부치고 통증을 달랬더니 울긋불긋 두드러기 같은게 나더니만 슬슬 번지는게 아닌가. 암만해도 파스 부작용이지 싶어 이 사람 저 사람 물어 봤더니 그럴 수 있단다. 그럴 수 있다기에 그럼 그렇지 하고 또 하루를 내비뒀다. 그랬더니 이건 또 왠일인가. 두드러기마다 물집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간지러워 죽을 지경인 것이 얇은 옷자락만 스쳐도 그렇게 고통스러울 수 없게 된 것이다. 그제서야 안되겠다 싶어 병원으로 직행했는데 증세를 들여다 본 의사가 담박 슁글스란다. 이런 것도 병명이 있는가 싶어 의심스럽기도 하고 내가 여적 들어 보지도 못한 병명에 걸렸다는게 쉽게 인정되지 않아 눈만 껌뻑이고 앉아 있는데, 그런 내게 조분조분 설명해 주는 친절한 의사. 그리고는 크기가 무지막지하게 커 여간해선 목구멍에서 넘어갈 것 같지 않은 알약을 선심쓰 듯 많이도 준다. 것도 모자라니 약국에서 더 받아 먹어야 한다는 소리에 여간해선 비타민도 신물이 올라와 잘 먹지 않는 난데 이게 왠일인가 싶어 앞이 노래졌다.
지시대로 한무더기의 약을 얌전히 입에 다 털어넣고 나면 배속이 다 그득할 지경이었지만 가려움과 아픔의 고통만 없어진다면야 뭔 일인들 못할까 싶었다. 게다가 힘들었던건 육신의 고통만이 아니었다. 몸이 불편하니 마음이 왜그리 약해지는지, 심사가 꽈배기 꼬이듯 배배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집 꼬마 녀석들은 지네들한테 금새 옮아붙는 줄 알았는지 내 근처엔 얼씬도 하려들지 않았다. 몸통 중간이 온통 포진으로 그 지경이 되었으니 내 나이에 어울리지도 않는 배꼽티를 입어야 했는데 녀석들은 멀찌감치 서서 그 부분을 오롯이 들여다 보다가는 으유!~ 하면서 기겁을 하곤 했다. 그나마 기댈데라곤 남편 밖에 없었는데, 인터넷으로 한무더기의 정보를 수집한 후 이내 찝찝한 얼굴을 하는게 아닌가. 치킨팍스를 한번도 앓은 적이 없는 그가 전염대상이 될 수가 있다니 근심스럽기도 했을테지. 암말 못하고 있는 남편에게 분방을 제안하니, 아니 이 남자, 빈말이라도 싫다는 소리 한번 안하네. 씨~ 섭섭하다 말도 못하고 홀로 빈방에 격리된 그 설움, 아무도 모를거다.
그렇게 며칠을 독방살이하면서 곰곰 전염이란걸 생각해 본다. 나쁜 전염이 있다면 좋은 전염도 있을테지. 전자가 가까이 하기를 꺼리는 것이라면, 후자는 가까이하고 싶게 만드는 것일게다. 좋은 전염. 그런걸 일으키는 사람이고 싶다. 나쁜 전염도 전염시킬 인자를 가지고 있어야 가능할진대 좋은 전염은 말할 것도 없겠지.
좋은 전염을 일으키는 인자가 내 속에, 그것도 풍성하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홀로 빈방에 앉아 목젓이 뻐근하리만치 무식하게 큰 알약을 목구멍 속으로 꿀꺽 밀어 넣으며 가슴 저리게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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