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용 목사 추모사
그 날은 웬일인지 잠이 일찍 깨었습니다. 새벽기도 가기에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었지요. 그런 경우 평소에는 성경을 읽는 게 저의 생활습관입니다만 이날 만은 이상스럽게 인터넷 신문이 읽고 싶었습니다.
기사 제목만 쭉 훑어보는 데 바로 거기에 강원용 목사님께서 돌아가셨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향년 89세이셨네요. 아무튼 목사님의 별세 소식이 저를 깨웠나 봅니다.
목사님은 저를 기억하시지 못하실 것입니다. 담임하셨던 서울 경동교회에 제가 4년간 다니기는 했지만 원래 조용하게 교회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저에게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때나 이때나 온건 보수적 신앙생활이 제 체질에 맞는데 목사님 설교는 가히 혁명적이라 할만큼 진보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부흥회에 대한 거센 비판, 성찬예식에서 인절미와 막걸리를 사용하겠다는 주장, 성경의 비신화화, 역사적 예수... 심지어 천국과 지옥은 오직 마음의 문제일 뿐이라는 내용은 저에게는 매우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래도 교회 옮길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주일예배만은 꼬박꼬박 출석했습니다. 설교 내용에는 목사님을 따를 수 없었지만 다른 목회자에게서 배울 수 없는 점들을 목사님에게서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신앙적 사고의 폭이 매우 넓었습니다. 그 때 한창 떠돌던 영화용어로 ‘와이드 스크린 신앙’을 젊은 세대에게 가르치셨습니다. 다른 종교의 경전을 자유로이 인용하셨고 현대세계의 여러 이슈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열정적으로 설교하셨습니다. “교회가 결코 크리스천 게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선언하시던 음성이 지금도 귀에 쟁쟁히 들려옵니다.
목사님은 한국 현대사의 험악한 고비를 넘어오시면서 자유민주주의를 향한 횃불이 되셨습니다. 설교로, 강연으로, 글로, 행동으로 소신을 굽히지 않고 젊은 세대들의 큰 박수를 받으실 만큼 투쟁하셨습니다. 저러시다가 모 기관에 의해 박해 받으실까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실제로 인격살인을 당할 뻔 하셨다면서요.
그런 중에도 목사님께서 ‘대화문화’ 확산운동을 주도하신 것은 한국역사에 길이 기억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남북분단 상황, 특히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정치 이데올로기가 한반도에서 진검승부를 겨루고 있고 또 그런 흑백논리가 권력유지의 중요 수단이 되어 있던 때가 아닙니까? 목사님 말씀대로 정부를 지지하면 ‘사꾸라’가 되고 반대하면 박해를 받아야 하는 숨막히는 세월이었지요.
그런 때에 목사님은 과감히 대화운동을 앞장서서 전개하셨습니다. 지난 40여년 동안의 대화운동은 한국역사에서 큰 결실을 맺게 되었는데 크게는 남북대화를 비롯하여 적게는 부모와 자녀간의 대화까지 대화가 문제해결의 가장 중요한 도구로 생활화되었습니다.
종교간의 대화를 유도하신 것은 더욱 빛나는 일입니다. 오늘의 세계에서도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에 종교간의 대화와 친선은 정말 절실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주도하신 대화운동이 더욱 빛을 발하게 됩니다. 그것도 기독교, 불교, 유교의 종교 삼국시대인 바로 한반도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이정근
유니온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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