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지으신 가운데/사람에게 가장 가까운 것은/나무이다.
우리가 때때로 멀고 팍팍한 길을/걸어가면 나무도 그 먼길을 말없이 따라오지만/우리와 같이 위으로 위으로 머리를 두르는 건/나무도 언제부터인가/푸른 하늘을 사랑하기 때문일까?
가을이 되어 내가 팔 벌려/치운 바람, 찬 서리를 받는다”
이는 다형(茶兄) 김현승(1913~1975) 시인이 말년에 ‘인간고독’과 ‘삶의 한계’에 부닥쳐 허무를 새삼 깨닫고 신에게의 감사와 참회를 형상화한 ‘나무’란 제목의 시편이다.
나의 집에는 나무가 참 많이 심어져 있다. 각종 나무들은 오늘도 묵묵히 고독한 자의 친구가 되어주고 생의 절실한 사랑이 없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깨우쳐 주는 것 같다. 저 무더운 더위에도 청정한 잎을 드리워 그늘을 만들고 세찬 겨울의 찬바람도 견디며 의연히 서있는, 또 온갖 겉치레를 벗어 던지고 정직한 모습으로 나에게 꼭 생의 애착을 가르쳐 주는 것 같아 항상 좋다.
나 어릴 적에는 잔병으로 꽤 고생했고 취미나 운동을 할 겨를이 없었다.
체구도 그리 강건하지 못해 만사에 적극적이지 못했고 공부는 잘한 편이었으나 과감한 결단력이 없어서 직장도 여러번 바꿨고 사업도 성공을 못하다 37세 때 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교직생활 17년을 했는데 이것이 가장 오래 근무한 직장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 당시부터 수영, 자전거 타기, 테니스 또 겨울엔 스케이팅 등을 지금까지 줄기차게 했던 게 내 나이 67세로 건강을 유지해온 원동력이 아닐까 한다.
43세 때 미국에 와서도 운동으로 테니스 그리고 취미로 글쓰기(일기나 시)를 자주 했는데 테니스는 얼마나 잘 치느냐 하면 동네 미국 할머니를 겨우 이길 실력(?)이고 글쓰기로는 시집 한 권 그것도 근년에 냈는데 안타깝게도 독자 한 분한테도 찬사(?)를 받아 본적 없는 그러니까 무명의 시인이다.
이곳 포모나에서 조그만 그로서리 가게를 하며 나는 아내를 이렇게 위로한다.
“우리가 가게를 20년 넘게 했지만 그동안 돈은 못 벌었으나 무탈했고 건강을 벌지 않았는가. 이제 늙어가며 건강부터 챙겨야 후에 노환으로 고생 안하고 건강한 육체와 마음으로 고독과 시련에서 벗어나 노년을 지혜롭게 살며 행복을 누릴 수 있지 않는가”
전종진
재미시협 회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