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한국일보 오피니온란에 ‘위헌이냐 위험이냐?’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영국 정부가 지난 10일 테러리스트들의 여객기 폭파음모를 퇴치한 후 인종·종교가 기준으로 들어가는 테러리스트 프로파일링을 통해 중동인과 회교도들에 대한 집중검색 방책을 세우고 있으며 그러한 ‘용단’을 내리는 영국 지도자들이 가상할 뿐 아니라 언젠가는 미국에서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내가 알기로 영국의 지도자들이 그러한 ‘용단’을 내렸다는 부분은 정확하지가 않은 것 같다. 그에 유사한 주장이 있었지만 이에 대해 영국의 언론과 정부는 격렬한 찬반의 논란을 벌이고 있고 정부측 대변인들의 의견은 한결같이 부정적이다.
‘위헌이냐 위험이냐?’의 주장은 지금까지 자살폭탄 테러리스트의 거의 전부가 아랍계 인종이므로 인종·종교 프로파일링의 대상은 자명하고 앞으로도 다른 인종이나 회교도 이외의 종교인이 테러리스트가 될 가능성은 낮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실제로 영국 정부가 그러한 정책을 세우는 작업을 진행 중인지에 대한 확인이 없는 상태에서 그것을 기정사실로 논의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이라고 본다. 나아가 인간 또는 인명이 법 위에 있다는 논리로 법을 무시하고라도 특정 인종과 종교 등의 프로파일에 맞는 사람들을 중점적으로 검색해야만 할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미국에서 소수민으로 살고 있는 우리 한인들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자살폭탄은 아닐지라도 이미 비행기 폭파 테러를 저지른 바 있는 북한은 현재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실험 문제를 놓고 미국 정부와 치열한 벼랑 끝 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면 북한 정권이 테러를 정치·군사의 한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 하룻밤 사이에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은 적대적인 확대경 밑에 놓여질 수도 있다.
미국 정부가 북한과 있을 수 있는 비상사태에 대처하기 위하여 한국어와 영어의 이중언어 구사 인력을 확보하는 데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예를 들어 북가주의 몬트레이에 있는 국방 언어교육원(Defense Language Institute)에는 한국어 수강자들의 숫자가 아랍어 수강자 다음으로 많다.
인종, 국적, 종교 등을 기준으로 집중적인 검색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인류가 지난 2세기 동안 수많은 어려움 속에 힘겹게 불완전하나마 이루어놓은 평등의 이상을 단숨에 무너뜨리는 일이다.
특정 집단을 타겟으로 하는 경우, 다음 단계는 아마도 그들을 좀더 쉽게 구분하기 위하여 어떠한 식의 표식을 착용할 것을 의무화하는 것이 될 것이고 그 다음에는 좀 더 쉽게 그러한 집단을 통제할 수 있기 위하여 일정 지역에 강제로 모여 살게 하는 일일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우리의 아버지 세대 내지 할아버지 세대의 시대에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났었던 일들이다. 그러한 노정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는 방책이 우리 사회에서 주장되고 있다는 사실이 등골을 서늘하게 한다. 그 피해자가 미주 한인이 될 수도 있다.
김철회
법정 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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