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정
예전, 한국에 살 때 가장 답답했던 것은 혼자 다니지 못하는 것이었다. 워낙 좁은 나라에 많은 이들이 살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사람이 넘치고 그래서 혼자인 모습이 흔치 않아 사람들의 눈에 띄었던 것 같다. 좋은 영화를 혼자 보며 깊이 빠져 있다가 영화가 끝나고 스테프들의 이름이 주르르 흘러나오고 불이 켜질 때까지, 앉은 그대로 땅속으로 스며들고 싶을 지경의 충만함과 그 충만을 안고 천천히 거리를 나설 때까지의 혼자됨, 산을 바라보며, 들의 품에 안겨, 바다를 향해 말을 걸며 즐기던 혼자됨은 늘 사람들의 성가신 관심 때문에 귀찮았다.
미국에 오니 거꾸로 너무 사람이 없어 재미없다. 그저 평범한 중산층의 주택가에 사는데도 십 여분만 달리면 호젓한 산중이 되고 서너 시간만 달리면 기후가 달라질 정도로 다양한 풍토의 미국인데도 어딜 가도 막막한 자연이고 구석구석에 있어 주었으면 좋은, 센스 있는 이름의 작은 카페나 레스토랑은 어디도 없다. 그래서 자연이 더 보호되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만.
몇 주전, 산호세가 기록적인 104도의 폭염에 시달리던 주말, 라슨 볼케닉 내쇼날 파크로 캠핑을 갔다. 오래 벼른 산행이었다. 30마일 떨어진 도시는 110도라는데 산으로 들어가면서 기온은 점점 내리고 짙은 수풀 안에 고즈넉이 들어 앉아있는 캠프장은 나뭇잎과 흙내음으로 향긋했다. 텐트를 치고, 밥을 앉히고, 준비해간 은대구 매운탕이 보글보글 끓을 때면 정처 없이 떠다니는 홈리스도 행복한 순간들이 있겠구나 싶다.
많은 이들이 캠핑이 불편해서 싫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 불편함이 마치 어릴 적 소꿉놀이하는 듯한 어설픔이 있어 좋다. 가까이 쩔쩔 끓는 도시가 있어서 그런가, 의외로 별로 춥지 않아 텐트의 방충망 아래 머리를 두고 누워서 하나씩, 하나씩 떠오르는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라슨 파크는 조그만 스케일의 옐로우스톤이라 할까? 짙은 회색의 진흙탕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곳곳에서 유황냄새를 풍기며 흐르는 물아래 그 안에 녹아있는 광물질 때문에 혹은 분홍, 혹은 보라.. 등등의 색으로 화사한 돌들이 눈을 끈다. 그곳에 이르는 트레일은 온통 눈으로 뒤덮여 미끄러지고 자빠지고 굴러서 간신히 갔는데 한여름에 맞는 눈밭은 신기하고 경이로웠다. 눈은 아직도 지붕 위를 넘고 눈 덮인 호수는 여기저기 녹기 시작하면서 마치 물감이라도 들인 듯, 눈부시게 밝은 옥색이 승무를 추는 무희의 긴 소맷자락 같다.
무궁한 자연은 그림이 되어지기를 바라는 온갖 꿈의 편린을 켜켜이 간직하며 우리에게 손짓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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