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문자<수필가>
우리가 처음 이 곳으로 이사를 왔을 때에는 집 옆에 거대한 살구 밭이 있었다. 살구 밭의 주인은 그 밭의 뒤쪽에 있는 집에서 살았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이웃과 사이좋게 지냈는데, 그 덕분에 살구나무들은 해마다 가득히 피어오르는 꽃들의 장관으로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하기도 하고, 우리의 입맛에 새로운 즐거움을 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우리의 부엌 창문이 살구 밭을 바라보고 있기도 하여서, 그 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나의 눈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도 하였다.
어느 해였던가. 그 때에는 이른 새벽에 살구를 따는 인부들의 소리에 아침잠을 설치지도 않았으며, 잘 익은 살구들은 하염없이 땅으로 떨어지면서 밭이 통째로 방치되어 있었다. 궁금하였던 나는 이웃의 문을 두드리고 추수 때의 살구 맛을 볼 수가 없는 이유를 알아보았다. 그 해의 이른 봄에 우박이 왔던 것이 살구에 미약한 흰 점들을 남겨 상품에 치명상을 주었는데, 잼을 만드는 회사에서도 사기를 거절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때에 나는 비로소 미국의 농부들에게도 있는 수입 농산물과 그에 따른 타산성에 관한 고민도 알게되었다. 팔지 못해 밭에 그냥 있는 살구를 우리가 통째로 물려받았으나, 덩달아 우리의 마음이 아팠던 그 때야말로 살구를 먹지 않고 지나간 해이기도 하였다.
살구 밭과의 정다웠던 사연도 끝이 나고, 마침내 나무들은 뿌리째 뽑혀서 밭 가운데 여기저기에서 불태워진 후, 거대한 야채 밭으로 변모하면서 우리와의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었다. 일년에 야채가 두 번을 심겨지면서, 여러 가지의 싱싱한 야채가 우리의 식탁에 오르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옆집의 감나무, 석류나무도 우리의 것이나 마찬가지의 역할을 하였는데, 그것은 이 곳 Hollister의 터주대감이기도 하고, 대농장의 주인이기도 하고, 이 곳의 병원이나 길에 붙어있는 이름을 물려받은 이웃 할아버지의 좋은 마음씨 덕분이기도 하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가족사항은 알지를 못하지만, 한 아들이 아버지를 도와 트랙터로 밭을 갈기도 하고 아버지의 집에 드나들기도 하였다. 어느 날 그 부지런하고 검소하던 할아버지가 나이 많아 세상을 떠나시고, 그 해에는 아들이 대신 맛있는 감을 전달해 주면서 앞으로도 전과 같이 감을 가져다 주겠노라고 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정말로 고맙다는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그 이후에 다시는 그 할아버지의 아들을 볼 기회가 없었는데, 아버지를 도와서 그리도 열심히 일 하던 그 밭에서 이제는 다만 트랙터를 운전하는 멕시칸의 친절한 미소를 보게 될 뿐이었다. 할아버지의 아들을 어째서 다시는 볼 수가 없는지는 알 수가 없었으나 무엇인가 서서히 바뀌고 있다는 것은 감지가 되었다.
전에는 야채를 심은 후에, 풀을 뽑을 때가 되거나 거두어들일 때에는 수많은 인부들이 와서 밭의 일을 하였다. 그러나 불법체류자를 단속하고 외국의 농산물수입이 늘어나면서 농사를 짓는 방법도 함께 바뀌는 것을 본다. 사람이 하나씩 거두는 대신에 기계로 심고 잔디를 자르듯이 어린 상치를 단시간에 기계로 잘라내는 농사법에서, 이제는 인부들을 볼 수가 없다. 머리띠를 두르고 집단으로 목적을 향해서 외치지 않으나, 조용한 가운데에도 심각한 미국 농부들의 고민도 보인다. 상해보험도, 인부들을 구하는 일도, 인건비도 절약되는 이러한 방법은 어쩌면 우리가 당면해야 할 장래의 문제와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닥쳐 올 직업과 이민에 대한 어떤 예고가 아닐 것인가. 이제 옆집의 살구 밭은 세월을 따라 가 버렸으나, 삶을 파고드는 새로운 난관과 아이디어는 그 변화의 과정 속에서 늘 우리와 함께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된다. 변화는 진행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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