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코네티컷의 할리데이 인 회의실에 22개국에서 온 젊은 여성 167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부유층 미국 어린이들 돌보는 일에 대한 개인 지도를 받기 위해서였다. 이들이 가장 먼저 배운 것은 미국 어린이를 돌볼 때 TV를 끄는 게 우선순위 넘버원이라는 점이었다. 이들 여성 가운데 대다수는 독일에서 왔다. 그러나 두 명의 여성이 눈길을 끌었다. 규니 리(23)와 만 장(24)이다. 이들은 중국에서 왔다. 이들 모두는 가정부다. 일명 ‘오페어 걸’(au pair girl)로 불린다. 남에 집에서 머물면서 숙식을 해결하는 대신 가사를 돌보는 것이다. 그리고 오페어 걸의 입장에서는 영어를 배우는 게 목적이다.
미국가정들 “미래의 금융시장 중국이 좌지우지”
자녀의 국제경쟁력 제고 위해 중국어 학습 붐
중국소녀 입양가정 늘면서 ‘동포 가정부’ 필요
숙식제공·월급·여행도… 지난 2년 새 문의 1,400건
젊은 중국대학생들 “영어 거저 배운다” 큰 관심
중국 부모들 “왜 하필 미국서 가정부냐” 반대도
중국 가정부는 특히 요즘 수요가 늘고 있다. 부분적으로 중국에서 소녀들을 입양해 오는 미국인 가정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입양아를 잘 돌보려면 아무래도 중국인 가정부가 적격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미국 부모들은 자녀들이 장래를 위해 중국어를 배우길 희망한다. 장래 중국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오페어 걸을 통해 자연스럽게 중국어를 익히게 하고 싶어한다.
그러니까 입양가정은 자녀의 성장과 언어습득에 도움을 받게 되고 오페어 걸의 입장에서는 영어를 공짜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서로에게 윈-윈 이다. 미국에 와 있는 오페어 걸들을 관장하는 미국외국연구소의 윌리엄 커츠 회장은 “우리의 고객은 주로 중상류층 가정이다. 그들은 무언가 실질적인 도움을 얻기를 원한다. 뒤처지기를 원치 않는다”고 했다. 수요가 많다는 얘기다.
중국어를 말하는 오페어 걸을 원하는 미국가정은 지난 2년 새 급증했다. 물론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미국에서도 어렵지만 중국에서 구해오기도 만만치 않다. 20년간 오페어 걸 알선 사업을 해 온 ‘Au Pair in America’는 2004년까지 중국인 오페어 걸 요구를 단 한 건도 받지 못했다. 그런데 그 이후로 무려 1,400건이 접수됐다.
이 회사는 내년 말까지 중국 오페어 걸을 200명 더 데려올 계획이다. 다른 알선 회사들도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과 미국의 문화교류 비자기준이 완화된 점을 십분 활용할 참이다.
베이징 북부 할빈에서 온 홍빈 유(23)는 영어를 공부하는 다른 중국대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영어이름을 지었다. 세실리아다. 세실리아는 미국에 오페어 걸로 온 첫 중국인이다. 세실리아는 국무부가 승인한 11개 알선회사 가운데 하나인 ‘Go Au Pair’사를 통해 지난 3월 미국에 왔다. 세실리아는 카멜 밸리에 사는 조앤 프렌드의 집에서 생활한다.
프렌드는 두 자녀를 두고 있다. 짐(5)과 파리스(6)다. 프렌드는 자녀들이 어른이 되면 중국이 금융의 중심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미리부터 자녀들에게 중국어를 익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원어민을 찾을 길이 없어 ‘Go Au Pair’를 통해 세실리아를 알게 됐다.
플로리다 탬파 교외지역에 사는 진 루카스도 비슷한 생각이다. 영어만으로는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된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다고 판단해 중국어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기로 했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중국어 교사를 찾을 수 없었다. 다행히 ‘Au Pair in America’의 도움으로 오페어 걸을 구했다.
오페어 걸로 일하는 세실리아는 영어를 전공했다. 그리고 관광학도 공부했다. 아이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친다. 프렌드는 세실리아의 숙식을 책임지고 매달 봉급도 준다. 아울러 여행을 좋아하는 세실리아를 애리조나, 샌프란시스코, 뉴포트비치 등으로 여행시켜준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여전히 오페어 걸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다. 부모들은 대학을 졸업한 자녀가 미국에 가서 가정부 노릇을 한다는 말에 펄쩍 뛴다. 베이징 공항에서 콘티넨탈 항공에서 일하던 딸이 미국에 가정부로 간다고 하자 극구 반대한 부모도 있다. 얼마든지 더 좋은 일자리가 있는데 굳이 미국에서 식모 노릇할 게 무어냐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에서도 경제발전과 기회 확대로 인해 여성들에게도 각종 일자리가 열려 있다. 능력만 있으면 진취적이고 다이내믹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 그러니 가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쉽게 지우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있다.
그러나 오페어 걸을 자처한 중국 젊은 여성들은 또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젊었을 때 미국이라는 넓은 세상에서 살면서 영어와 미국 문화에 깊숙이 젖어보고 싶은 것이다. 그것도 돈 하나 안들이고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긴다.
<뉴욕타임스특약-박봉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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