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란<수필가>
무엇을 쓸까 며칠 동안 머리를 쥐어 뜯던 어느날, 운전하다가 흘러 나오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영화 음악을 연주한 요요마 CD곡 중 ‘시네마 천국’의 아름다운 선율이 귀에 들어 왔다.
깊고 낮고 따뜻한 첼로 음이 맑은 가을 햇살과 참 잘 어울린다고 느끼면서, 이 영화를 본지가 거의 20년 가까이 되는데도 꿈 많고 천진한 꼬마 소년 토토와 2차 대전과 가난에 지친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 어느 작은 마을 주민들의 유일한 오락거리였던 극장 ‘시네마 천국’에서 영화를 틀어 주던 영사 기사 알프레도 할아버지와의 가슴 따뜻한 우정이 떠올랐다.
이 영화는 세계적인 영화 감독이 된 중년의 토토가 어린시절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그에게 친구가 되어 주고, 사랑의 열병을 앓는 청년기 때에는 사랑의 상담도 해주고, 꿈과 현실, 인생에 대해서도 자신의 경험을 통한 나름의 철학을 조언해 준 스승이기도 했던 알프레도와의 추억을 회고하는 형식의 영화였다.
자신의 꿈을 이룬 토토에게 남겨진 알프레도의 유품인 작은 필름 상자에, 그가 어렸을적 극장에서 그렇게 보고 싶어했지만 검열로 삭제된 키스 장면들 만을 모아 놓은 화면을 보면서 그를 회상하며 눈물 흘리는 영화의 마지막은 오래도록 나의 마음에 남아 있다.
한국 영화 ‘왕의 남자’의 마지막 장면인 장생의 줄타기 장면도 나의 마음에 오래 남아 있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가진거라곤 맨 몸뚱이 뿐인 밑바닥 인생 장생이 눈을 잃고, 죽기 전 마지막으로 줄 위에 올라서서 이제 눈이 보이지 않으니 온통 허공 뿐이라며 다시 태어나도 나는 광대라 외치면서 하늘로 날아 오르던 마지막이 왜 그리 슬프던지…
우리의 삶도 그런 외줄 타기 인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줄 위로 발을 내딛었으니 줄이 길건 짧건 타긴 타야겠는데, 줄 아래를 내려다보면 너무 아득해서 무섭고, 바람이 불거나 발을 조금만 잘못 헛디뎌도 나락으로 떨어지는 우리의 모습이 눈을 가리고 앞이 보이지 않는 채 줄을 타는 그와 비슷했기 때문이었을까…
평범한 일상의 행복이 한 순간으로 유리잔처럼 얼마나 쉽게 깨질 수 있는지, 젊은 날의 사랑이 눈꽃처럼 얼마나 허무한지 알게 되면서, 결국 앞에 놓여지는건 좋건 싫건 타야 하는 허공에 드리워진 외 줄, 내가 감당하고 살아 내야 할 내 몫의 삶 만이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삶의 장단에 맞춰 줄을 함께 타는 사람이 나와 호흡이 맞으면 재미 날수도 있고, 제대로 맞지 않으면 아슬아슬하고 진땀 나는 그런 줄타기 말이다.
닥쳐온 불행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허허 웃는 낙천성과 다시 태어나도 나는 광대라는 현재 자신의 모습과 삶에 대한 사랑과 열정 없이는 이 징한 세상 한 판 신명난 놀이판으로 놀다 갈 수 없다고 나는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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