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소련의 스탈린은 소위 인종 청소 캠페인의 일환으로 동쪽 끝 북한과 맞닿은 국경지대에 살고 있던 한인들을 대거 중앙아시아로 이주시킨다. 이때 장장 3,700마일에 이르는 거리를 가축을 실어나르는 열차에 실려 강제 이주된 한인들의 숫자는 무려 18만명이나 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라 잃은 백성으로 남의 땅에서 서럽게 살아가다 또 한 번 정치적 희생양이 돼 황량한 대초원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인 고려인들.
이들의 삶을 생생히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고려사람: 신뢰 못할 사람들’이 오는 29일 오후 2시 스미소니언 새클러 갤러리의 마이어 오디토리엄에서 시사회를 갖는다.
감독은 영상예술가로 워싱턴 한인사회에 잘 알려진 데이비드 정 미시건대 교수(사진 . 미술학/한국학). 매트 디블씨가 편집을 맡고 메리디스 유가 제작자로, 또 카작 주립대학의 게르만 김씨가 역사 고증 자문으로 참여했다.
공포 정치(Great Terror)가 한창이던 1930년대 당시 스탈린은 일본과의 충돌을 피한다는 이유로 일제에 합병된 조선을 떠나 블라디보스톡을 중심으로 모여 살던 한인들을 대거 카작스탄과 우즈벡스탄으로 옮길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이것은 기아로 주민들이 몰살당한 그 지역에 다시 사람들을 거주시키려는 의도였다.
카작스탄에 살게된 고려인들은 9만8,000여명. 국가가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로 낙인찍혀 아무도 돌보지 않는 대초원에 버려졌지만 그들은 집단농장을 일구는데 마침내 성공, 소련 정부는 이들의 생활을 ‘영웅적인 스타일’로 기록에 남기기도 했다.
정 감독은 “다른 강제 이주민들과 섞여 살면서도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고려인들의 삶은 문화적 유산의 힘을 보여주는 좋은 실례“라며 “타민족과의 결혼, 언어 및 풍습의 차이 등 유사한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미국 이민자들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정규섭 전 튀니지 대사의 3남 1녀중 차남으로 조지 메이슨대 교수로 재직했으며 미주한인재단-워싱턴이 추진하고 있는 한국문화상징 조형물 건립의 설계를 맡고 있다.
영화 ‘고려사람’은 다음달까지 상영되며 관람은 무료이나 한 시간 전에 입장 티켓을 받아야 한다.
문의 (202)633-4880 새클러 갤러리.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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