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양키스와의 플레이오프 1회전 첫 경기에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선발로 나선 네이트 로벗슨은 5.2이닝동안 12안타를 얻어맞으며 7실점하고 패전투수가 됐다. 이후 3연승 한 타이거스는 A’s와의 챔피언십 시리즈 첫 경기에 다시 로벗슨을 내보냈다. 충분히 휴식을 취했기 때문에 저스틴 벌랜더나 케니 로저스 같은 1회전 경기서 좋은 투구내용을 보인 투수를 내보낼 수도 있었는데 짐 릴랜드 감독은 고집스레 로벗슨을 택했다. “왜 다른 투수를 내보내지 않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It’s a guy thing”이라고 대답했다. “사나이들 사이의 일”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이 말속에는 당장의 승리 가능성이 좀 더 높다고 로테이션을 바꿀 수 없다는 단호함이 배어 있었다. 로벗슨은 이 경기서 호투로 승리를 거두며 감독의 신뢰에 멋지게 보답했다.
만년 하위팀이던 타이거스가 돌풍을 일으키며 월드 시리즈에 일찌감치 진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자웅을 겨루게 됐다. 지난 1984년 이후 처음이다. 타이거스는 한 시즌 반짝한 후 내리막길을 걸으며 메이저리에서 거의 잊혀지다시피 한 팀이 됐다. 2003년 시즌에는 시즌 162경기 중 고작 43승을 거뒀을 뿐이다. 심야 코미디 쇼의 단골 소재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타이거스가 올해는 완전히 다른 팀으로 탈바꿈했다. 전문가들도 예상 못한 일이다.
돌풍의 타이거스 면면을 보면 ‘엘리트 팀’이라 부르기에는 어딘지 부족해 보인다. 몇몇 거포와 좋은 투수들이 있긴 하지만 올스타급 진용을 갖춘 일부 팀들과 비교하면 중량감이 떨어진다. 대우만 보더라도 정상급은 아니다. 선수 1인당 연봉은 메이저리그에서 14위 정도이다.
타이거스 돌풍의 중심에 바로 릴랜드 감독이 있다. 비쩍 마른 체구에 고집이 있어 보이는 릴랜드 감독은 올 시즌 타이거스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자기 색깔이 분명한 감독이다. 릴랜드 감독의 부친은 노동자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블루칼러적인 색채가 진하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다저스와 같은 부자 명문 구단이 그의 영입에 공을 들였지만 돌아온 대답은 “노”였다. 그러고는 타이거스를 택했다.
41세로 타이거스의 최고참 투수인 케니 로저스는 실력은 뛰어나지만 불같고 유별난 성격 때문에 모든 팀들이 꺼리는 선수였다. 올해 2년 계약을 맺고 타이거스에 새 둥지를 튼 로저스는 팀메이트들과 잘 융화한 것은 물론 17승이나 거두며 타이거스 돌풍을 이끌었다. 그는 “릴랜드가 이끄는 팀 속에 섞여 뛰게 되면 자신이 무언가 인상적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한다. 지도자에 대한 최고의 헌사가 아닐 수 없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비결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그 사람 스스로 움직이고 싶다는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 원동력은 믿어주는 것이다. 타이거스의 성공은 릴랜드 감독의 ‘믿음의 야구’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공교롭게도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믿음의 야구로 유명한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한화가 한국 시리즈에 진출했다.
조직이나 기업의 경연과 관련해서 무수한 이론들이 있지만 결국 한마디로 말하면 사람 경영이다. 타이거스의 돌풍은 믿음의 경영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아무래도 올해는 호랑이의 한해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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