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찾음이다
김 희봉(수필가)
여행은 찾음이다. 낯선 길을 가다가 문득 옛 친구를 만나는 기쁨이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곳에서 숨은 내 뿌리를 찾았을 때의 경이로움을 맛보는 것이다.
루프트한자 747기는 샌프란시스코를 떠난 지 십 수 시간만에 우리 일행들을 동유럽 대륙 한가운데에 내려놓는다. 서양과 동양의 길목인 헝가리. 과연 헝가리와 나는 어떤 인연으로 만날 것인가? 부다페스트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가의 풍경은 매우 낙후된 모습이다. 오랜 공산치하에서 허덕였던 궁핍함이 배어있다. 그러나 도심에 가까울수록 웅장한 중세왕궁과 사원건축물들이 우리를 압도한다. 다뉴브강변의 융성했던 옛 제국의 모습이 드러난다.
헝가리는 마자르(Magyar)족의 나라다. 이들은 아시아 유목민족의 후예로 9세기경 우랄산맥을 넘어 유럽국가들을 유린하고 다뉴브강변에 정착했다. 용맹스런 기마 민족으로 유럽제국들은 이들의 침공을 막으려 훗날 신성로마제국을 세울 정도였다.
그런데 이 마자르족이 우리 한민족과 뿌리가 같다는 것이다. 놀랍다. 우선 같은 우랄알타이어족이다. 마자르가 동방 기마족이란 근거에서 말갈족으로 추정된다고 인솔자는 말한다. 말갈이면 고구려가 당나라에 멸망한 뒤, 그 유민들과 함께 699년에 발해를 세운 우리들의 사촌들이 아닌가? 발해의 시조 대조영은 고구려인으로 후대 왕들에게 “고구려 정신을 잊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특히 발해의 10대 선왕 때는 북으로 흑룡강, 서쪽으로 몽고까지 뻗었다.
헝가리인의 또 한 갈래는 흉노, 즉 훈(Hun)족이다. 몽골고원에서 살던 유목민족으로 유럽을 짓밟고 로마제국까지 위협했다. 453년 아틸라 왕이 병사한 뒤, 일부는 이곳에 정착, 마자르족과 동화되었다고 한다. 1240년엔 몽고군의 대대적인 침공으로 헝가리는 또 다시 동방과의 인연을 이어간다.
우리 한(韓)민족의 뿌리는 북방 기마 민족이다. 이들은 중앙아시아에서 일어나 몽고, 만주, 한반도를 잇는 긴 우랄 알타이 언어권을 형성해 왔다. 그래서 역사의 정설은 북방의 모든 소수 유목민족들과 한민족을 같은 핏줄로 보는 것이다. 중국의 한(漢)족과는 다르다. 이들은 중국본토에 살던 농경민으로 말부터 전혀 다르다. 최근 중국이 북방 민족들을 수하에 넣으려고 벌이는 동북공정은 분명한 역사왜곡이다. 마치 마자르족을 중국인의 후예라고 우기는 것과 같다.
삼성과 LG 현수막이 펄럭이는 노천 카페에서 옆자리 헝가리인 들과 눈인사를 한다. 물론 많이 서구화된 모습이지만 어딘지 동양인의 골상이 보인다. 유럽사람 치곤 좀 작은 체구에 검은머리들이 꽤 많다. 인솔자 M님은 왠지 정이 가는 헝가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준다.
“주위 강국들의 길목에 끼어 수많은 외침(外侵)을 견뎌낸 고난의 역사가 우리와 닮았습니다. 13세기 몽고, 16세기엔 오스만 터키, 그후 1700년에는 오스트리아 제국, 2차대전 후엔 소련의 공산치하에서 허덕였지요. 그래서 외적에 대한 강한 저항감이남 다릅니다. 애조 띈 헝가리의 음악, 그리고 집단성을 강조하는 민속춤도 우리와 유사하지요” 헝가리 민속음악의 음계도 우리와 같은 5음이라고 한다. 헝가리사람들이 지금도 가족 유대가 돈독하고, 정에 약하며 기분파 적인 기질도 마치 우리 얘기를 듣는 듯 하다.
전통 헝가리식당의 디너에서 유명한 굴라쉬 스프가 나왔다. K선배가 가지고온 고추장을 풀어 넣으며 “이거 좀 잘못 끓인 육계장 같네” 하며 맛을 보신다. 동방에서 온 유민들이라고 유럽사람들로부터 오랜 세월 ‘대륙의 섬’으로 불려온 헝가리. 그 첫 밤을 먼 나라로 시집간 친척집을 찾은 듯한 감회로 보낸다. 여행은 숨은 인연의 찾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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