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경(주부)
“안녕하세요. 한국일보입니다, 조미경 선생님 계십니까?”
기자분의 음성이 전해온다. 누구 엄마가 아닌 선생님이라는, 나에게는 생소한 단어 때문인지 내가 대단한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덜컥 마음이 시끄러운데 타이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정신이 번쩍 난다.
“타이틀이라 하심은 여성의 창 아닌가요. 아니면 제가 쓸 원고의 제목을 말하시나요?” 다시 생각해도 맹꽁하고 답답한 대답 아닌 질문이다.
“그러니까 화가나 의사나 뭐 그런 것 말입니다” 알기 쉬운 설명을 주시니 냉큼 대답한다.
“그냥 주분데요.” 이하 생략.
‘주부’라고 대답했을 수도 있는 일이건만 ‘그냥’이라는 수식어를 붙임으로써 나는 몽땅 주부여서 덜 당당하고 다른 무엇이면 좋겠다는 속내를 보인 셈이다. 사실 어딘가에 직업이라든가 직책을 묻는 칸이 있을 때는 그 여백의 자리로 쓸쓸함이 채워지는 것을 어쩌지 못한다. 스스로에게 빚을 지고 있는 기분이랄까 아무튼 쓸모 없는 기분이 되기 일쑤인데 그럼에도 나는 스스로 또 일으켜 세울 수 밖에. ‘그냥 주부’ 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데… 그렇게 나는 창가로 나와 앉아 세상으로 열린 문을 바라보고 있다.
나의 창에는 우선 아이와 남편의 얼굴이 보인다. 나는 말하자면 그 끈끈한 공동 운명체가 운영하는 잘 먹고 잘 사는 일의 구매 담당자이며 활동 대원인 셈이다. 신선하고 알뜰한 장을 보기 위해서 마켓을 서너 개쯤 다녀야 하고, 아이를 훌륭한? 대학에 보내기 위해 귀를 세워야 하고, 평생 업보인 영어와도 친해야 하고 등등의 이유로 하루를 부산히 열어간다.
가족과 친구들이 보이는 창문은 살갑고 애틋한 인성의 수련장이다. 나는 내 안의 그 미묘한 감정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채기도 전에 울고 웃고 악수하고 성장해 간다. 가끔은 그 지루한 감정의 소모전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관계의 소중함에서 살아있음의 기쁨을 느끼곤 한다.
인터넷으로 열려 있는 나의 창은 대단한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알려고만 하면 스탠포드 도서실이 부럽지 않을 만큼 자세하고 구체적인 정보들이 넘쳐난다. 구글에 가서 의문 나는 단어 하나만 입력해도 10분의 일초 만에 우르르 자료들이 몰려 나오니까. 더 이상 게으른 여편네일 수만은 없게 하는 바깥 세상으로 열려 있는 보물 창고인 것이다.
가끔 남편이 물어온다. 낮에 모해? 그 많은 자유 시간을 어디다 쓰는지 궁금한 모양이다. 글쎄…로 시작해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주부가 웃어야 가족이 행복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주부’들의 조용한 선택을 믿는다. 밥도 하고 애도 보고 청소도 하고, 그리하고도 웃음을 보이는 창가로 부서지는 하늘이 늘 엽전만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