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정(가족치유상담가)
얼마전 가정폭력 성폭력 프로그램인 ‘쉼터’에서 주최한 여성축제에 참가했었다. 해마다 참가하던 행사인지라 그리 특별한 기대를 가지고 간 건 아니었다. 그날 직장에서 있었던 일, 상담하고 있는 한 가족에 대한 생각 등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프로그램이 천천히 진행되면서 무심히 듣고 있던 내게 작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노래로, 춤으로, 시로 표현한 지극히 평범한 여성들의 삶이 조금씩 가슴을 적시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구타 당하면서도 자식에게 아무말 하지 못하고 혼자 속앓이 하는 엄마, 남편을 일찍 여의고 오랫동안 혼자의 힘으로 자식들을 뒷바라지하며 당당하게 살아온 엄마, 사람들의 비난과 사회의 잣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이모, 남편 뒷바라지, 아이들 뒷바라지, 그리고 시집 식구들의 시중을 들면서도 가계를 위해서 낮엔 또 열심히 일하는 여성.
이처럼 평범하게 보이는 수많은 여성들의 인생을 잠시 멈추어 바라보니, 그속에 내 모습이 보였다. 내 머리와 가슴에 깊히 새겨져 있는 기억속에 그들이 있었다. 평범한 일상생활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여자들… 끊임없이 부딪치는 온갖 장벽에 맞서 쓰러지지 않고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그들. 우리 엄마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우리 주변 여성들의 이야기, 혹은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도 평범하기에 자칫 잊기 쉬운 우리들의 이야기를 한데 모아 감동으로 전달해준 쉼터 프로그램에 고마움을 느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연스레 엄마를 떠올리게 되었다. 우습게도 난 한번도 엄마를 여성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만약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엄마를, 엄마의 삶을 바라볼 수 있었다면, 많은 것이 달랐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좀 더 일찍 내게 그런 성숙함이 있었다면, 아마도 엄마를 더 이해해 주고 안쓰럽게 여기기도 하고 같은 여성으로서 분노를 느끼게 되는 상황에선 함께 화도 내고 위로도 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뒤늦은 깨달음은 늘 후회와 더불어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이런 더딘 과정을 통하여 성숙해지나 보다.
대학시절 아침마다 내게 전화하여 아침은 먹었는지, 점심은 꼭 챙겨먹어라고 하여 자주 날 피곤하게 했던 엄마. 그것이 사랑이고 보살핌인줄 그땐 몰랐다. 누군가를 무척 아끼고 챙겨주고 싶을 때 가장 먼저 하게 되는 질문이리라. 요즘 가끔 어떤 뚜렷한 이유없이 화가 나고 슬퍼질 때가 있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속엔 엄마가 계신다. 과연 그 정체가 무엇인지, 엄마의 아픔이 왜 내게 스며들었는지 등은 좀 더 시간을 갖고 생각해 보고 싶은 부분이다.
엄마의 유령이었을까. 그날 무대위에서 춤을 추던 여성이 엄마같기도 했고, 시 낭송하는 목소리에 군데군데 묻어난 희미한 엄마의 소리. 여성축제에 참가하려 오셨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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