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란
고슴도치가 아이를 잃어 버리면 결국 찾지 못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만나는 동물들에게 자기가 새끼를 잃어 버렸는데, 털이 아주 부드럽고 예쁘게 생긴 아기 고슴도치를 봤느냐 묻고, 동물들은 그런 고슴도치는 못 봤다고 대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도 나의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 이야기에 공감을 한다.
나는 가끔 딸 아이의 방에 들어가 앉아 있고는 한다. 늘 그림을 그리고 종이를 오려대는 아이의 방은 그림물감이나 종이, 가위, 풀 등으로 어질러져 있고, 벽에는 아이가 세살 때 그린 꽃 그림이 걸려 있는데, 그 방에 들어가면 어린 시절 딸 아이 나이로 돌아가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내가 늘 일기를 쓰거나 무엇인가를 끄적거렸던 것처럼 딸은 아주 어려서부터 매일 그림을 그리는데, 아이의 그림은 아이만큼이나 밝고 사랑스럽다. 아이가 그린 꽃이나, 강아지, 고양이, 펭귄 그림을 보고 있으면 꼭 저처럼 그렸다는 생각에 자꾸 웃음이 나와서 나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번지고는 한다.
밝고 화사하고 따뜻한 아이의 그림은 어디가나 사람들의 눈에 띄이고 시선을 붙잡는데, 그림에 주로 쓰는 색깔 만큼이나 아이는 아직 어린데도 자기 멋 내는데 온갖 정성을 기울이고 예쁜 것을 좋아하며, 반짝이는 구슬 박힌 청바지와 레이스 치마, 예쁜 스타킹과 불편하게 보이는 구두를 하루 종일 신고도 꿋꿋dl 버틴다.
하긴 부르뎅 아동복과 죠다쉬 청바지가 최고인 줄 알며 헐렁한 교복입던 중학생 시절과 입시지옥에 찌들었던 여고시절, 친했던 선배와 친구가 데모하다 끌려가고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최루탄에 눈물 흘렸던 어수선하고 암울했던 대학 생활과 안정된 직장을 다니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적성에 안 맞아 괴로움에 떨었던 시간들, 그리고, 머나먼 이국 땅에서의 외로운 이민 생활 등…. 온갖 산전 수전 다 겪은 나와는 다른 밝고 자유로운 삶을 나의 아이들은 이곳에서 살아갈 것이다.
엄마 이거 입으면 예뻐, 엄마 이거 먹으면 살 빠진대. 먹어 봐…시시콜콜 나를 참견하고 귀찮게 하면서도 나의 배꼽을 빼놓는 엽기발랄한 고슴도치 아이들이 있어서 나는 참 행복하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세월이 흐를수록 나도 돌아가신 할머니의 고슴도치였음을 깨닫게 된다. 나의 할머님은 참 좋으신 분이셨다. 작은 일에도 기뻐했고, 늘 온화했고, 다정하고 따뜻하셨는데, 그 분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는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살아 가면서 자주 든다.
열감기라도 앓게 되면 며칠 밤을 내 옆에서 뜬 눈으로 꼿꼿이 앉아서 나를 지켰던 할머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며 하느님은 늘 우리를 지켜 보고 모든 것을 아신다던 그 분의 가르침은 나의 종교를 찾을 때까지 삶의 버팀목이 되었었다.
내가 철 없이 대해도 서운해하기보다는 허허 웃으며 나중에 이 늙은 할미 죽으면 네가 얼마나 후회를 하려고 그러냐며 나를 오히려 걱정했던 너그러우셨던 분…나의 온갖 투정과 하소연을 들어주었던, 커다란 고목나무 같던 그 분이 돌아가셨을 때 한국에 가지 못하고 많이 슬퍼하는 나에게, 너 같은 사람도 있어야 네 남동생들 같은 이 세상 효자들이 더 빛을 보는거 아니냐며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는 남편의 위로에, 나는 머리를 쥐어 뜯으며 말로만 듣던 그 청개구리 눈물의 의미를 몇 년전에야 깨달았다.
나의 아이들도 자라면서 머리가 커 가며,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 말을 안듣고 청개구리 짓을 하며 점점 나를 속상하게 할 때가 많아진다. 하지만 아이들도 언젠가 먼훗날, 나처럼 청개구리 눈물을 흘리면서 아파할 날이 오리라고 생각 해 본다. 그리고 그렇게 까칠한 가시투성이었어도 나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고슴도치였음을 아이들이 함께 알게 될 날이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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