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경(주부)
단풍잎 한 장을 불러와 가을을 본다. 그 잎에 색색으로 담아 놓은 구성진 가을이 고와서 몇 마디 말을 건넨다. 와글와글 그리 푸르더니 언제 물이 들었니? 여름 볕과 싸웠구나. 우리는 잠시 바라보며 친구가 되었다. 친구가 되었으므로 젖은 땅에 두고 오기 못내 서운하다.
책갈피에 눕힐까? 아가씨 때도 안 해본 짓이다. 어쩌지 못하다가 단풍잎에 이름을 붙인다. 춘향이. 단풍잎에 봄 ‘춘’자는 아니네. 그렇다면 향단이다. 향단아 안녕! 그렇게 향단이와 인사를 나누고 나는 더 깊은 가을로 들어와 있다.
이름을 불러주면 작별이 쉬울 것 같았다. 이름을 불러 의미가 되고 싶던 스무 살 무렵의 ‘꽃’이 아니고 다시 불러 내도 아프지 않을 오십 무렵의 두리뭉실한 ‘너그러움’ 때문이다. ‘손 한번 흔들어 하루 해를 보내’듯이 수없이 인사하고 떠나 보내는 누구누구에 대한 갈증과 가질 수 없던 것들에 대한 집착이 일상에 묻히고 날이 가고 그래서 잊혀져 버리는 것을 거친 마음 없이 받아들이는 나이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촛불을 켜고 화장을 해봐.’’
언젠가 친구가 살구향 나는 장식초를 선물로 주며 말했었다.
그러면?”
죽이지.”
죽이는 게 무엇일까 궁금해진 나는 늦은 밤 촛불을 켜고 화장을 한다.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그린 곳을 덧그리고 하얀 분을 입히고… 잃었던 눈매가 살아 나온다. 불빛 아래 거울 저편에서 중년의 여인이 낯설어 한다. 그 눈동자를 여과없이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이다. 지나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내 인생의 이쁜이, 꽃분이, 삼식이 삼돌이가 보인다. 그들의 이름을 불러내니 자유로울 수 없던 많은 것에 애닯아 잠 못 이룬 시간들이 겹쳐온다. 어머니 젖가슴에 손을 넣고 잠들던 먼 시절이 절대적으로 그립다. ‘어머니!’ 마음 한편이 따뜻해 온다. ‘나이가 드니까 니가 엄마를 제일 많이 닮아 가는구나.’언니가 그랬었다. 언니, 오빠 그리고 아버지. 어린 시절 모과 나무 밑에서 부르던 가족의 합창이 귓가에 맴돈다. 따뜻해지기 시작한 가슴은 애 끓이던 시간을 덮고 하나씩 좋은 이름의 얼굴을 불러내 온다. 고물고물한 아이의 움켜 쥔 손가락, 한 줄의 편지, 문 앞에 놓여진 식지 않은 죽 한 그릇, 포실한 목도리 그리고 사랑해. 그렇게 촛불을 켜고 화장을 한 날 검은 눈물을 본 것 같다.
추수감사절이라는 표현보다는 Thanks Giving Day라는 표현이 훨씬 좋다. 주신 것에 감사하는 날, 태어나서 내 곁에 함께 하는 모든 이들과 풀잎과 곡식에 마음 저리다. 들꽃도 먹이고 입히시는 하늘의 보살핌이 눈꽃 되어 어깨에 내린다. 충만해진 가슴은 ‘산보’ 나온 세상이 ‘아름다웠노라’고 말한 시인의 한잔 술에 하늘로 날아 오른다.
누군가 내 이름을 한번쯤 불러내 줄까. 그리움은 그래도 어쩌지 못한다. 나의 두고 온 단풍잎 향단이. 지난 여름 네가 그 잎을 마구 흔들어 주어 난 참 좋았다. 싱그러운 잎새로 데려온 바람은 코끝을 적시고 나는 그 향기로 숨 한번 크게 쉴 수 있었지. 그 그늘 아래서 올려다본 하늘은 늘 빛이 부서지고 청명해서 맺힌 마음을 새롭게 일구어 주었어. 고맙다는 말을 했었던가. 나의 모든 향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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