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딸에게서 아침에 전화가 걸려왔다. 30대의 주부인 딸은 여간해서는 아침 시간에 전화를 하지 않는다. 아이들 학교 보내랴, 남편 출근시키랴, 자기 아침 운동하랴 -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딸이 상기된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 저녁에 우리 집에서 식사하시겠어요?”
나는 일언지하에 못 간다고 했다. 그날은 마침 금요일이어서 의사인 남편이 늦게까지 환자를 보는 날이었다. 게다가 금요일 저녁은 프리웨이가 많이 막혀서 남편이 퍽 피곤할 것이었다.
딸은 실망스러운 투로 성게 때문이라고 했다. 사위가 그 전날 멕시코에 갔다가 엔시나다에서 친구로부터 큰 아이스박스 가득 성게를 선물로 받아왔다는 것이었다. “커다란 성게들이 살아서 움직이고, 아주 싱싱해서 아빠 엄마가 꼭 드셨으면 해요”
‘싱싱한 성게’라는 말에, 그리고 그 성게를 대접하려는 딸의 사랑에 우리는 피곤함도 잊고 병원 일이 끝나자 마자 부랴부랴 딸네 집으로 갔다. 딸은 자기는 성게를 손질할 줄 모른다며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다.
남편은 서슴지 않고 소매를 걷어올리고 고무장갑을 끼고 아이스박스 뚜껑을 열었다. 얼음에 채워져 있는 성게들이 얼마나 큰지 보통 성게의 2배는 되어 보였다. 삐죽삐죽한 가시도 얼마나 긴지 징그러울 정도였다.
남편은 하나를 집어 수돗물을 틀어놓고 요리조리 깨끗하게 씻었다. 그리고는 딱딱한 성게 껍질을 메스로 수술하듯 정성껏 힘들여 쪼갰다. “성게가 저렇게 크면 맛있는 알이 얼마나 가득 들어있을까”우리는 잔뜩 기대에 차서 들여다보았다.
“어머나!” 나는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껍질 속에는 노란 색깔의 싱싱한 알은 들어 있지 않고 시커먼 내장만 들어 있어서 컴컴한 동굴 속을 들여다보는 듯 했다.
남편은 딸이 볼세라 빈 쭉정이 성게 껍질을 얼른 쓰레기 봉지에 숨겼다. 그리고는 두 번째 성게를 또 그렇게 정성 들여 씻고 또 칼로 순서대로 쪼개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딸은 얼굴에 실망이 가득했다. “아빠, 왜 알이 없어요?” 하며 울상이었다.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요즈음 시즌이 그래!” 하며 계속 성게를 쪼갰고 딸은 매번 쭉정이인 성게를 보며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다섯 번째 만에 겨우 실오라기 같은 알이 몇 줄 나왔다. 그러자 남편은 큰 소리로 딸을 부르며 말했다.
“야, 이것 봐라. 이렇게 알이 들어 있는 것도 있잖아!”
텅 빈 쪽은 손으로 가리고 알이 있는 쪽만 보여주며 남편은 “성게라는 것이 그런거란다” 하며 마냥 기쁜 듯이 말했다. 딸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성게 10개를 모두 쪼개서 모인 알은 작은 고추장 종지에 하나.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딸은 “고단하실 텐데 공연히 오시라고 해서 미안해요” 하며 잔뜩 울상이었다. 결국 그날 저녁 우리는 성게 알은 못 먹고 껍질만 잔뜩 구경했다. 하지만 그날 나는 성게 알보다 더 소중한 것을 발견했다. 평소 과묵해서 표현도 별로 없는 남편의 딸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딸이 미안해 할까봐 애를 쓰던 남편의 모습이 두고두고 가슴에 남는다.
에바 오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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