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랜드 칼리지 파크에 거주하는 채수희씨(60)는 매주 금요일이면 버지니아 비엔나에 소재한 와싱톤중앙장로교회로 가기 위해 오전 9시에 집을 나선다. 편도 30마일의 거리로 보통땐 40분, 교통체증에 걸리면 1시간은 족히 넘게 걸린다.
채씨가 이곳을 찾는 것은 한인 노인이나 장애인에게 음식을 배달하는 한인 노인식사 배달((Korean Meals on Wheels) 봉사에 나서기 위해서다. 벌써 2년째다. 그는 30여명의 노인식사배달자 중 ‘가장 멀리서 오는 봉사자’다.
건강해서 이런 봉사라도 할 수 있는 게 기쁘지요. 낯선 이국땅에서 쓸쓸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어르신들은 우리 모두의 부모이고, 미래의 나의 모습이기도 해요. 작은 힘이라도 사랑을 전할 수 있어 오히려 제가 더 행복합니다”
자꾸 ‘별일도 아닌데 부끄럽다’며 사양하는 그를 따라 나선 지난 15일. 중앙장로교회에 10시경 도착한 채씨는 주방 봉사자들이 새벽부터 조리한 음식을 나누고 스티로폼 용기에 담는 일을 돕는다. 오늘 메뉴는 밥과 설렁탕, 계란찜, 야채볶음, 두부조림 등이다. 음식을 빨간색 보온가방에 챙겨 넣은 후 교회 주방을 나서는 시각은 11시.
그가 도시락을 배달하는 곳은 알렉산드리아 랜드막 샤핑센터 근처 클라릿지 노인아파트에 거주하는 한인노인 가정 여섯 집. 대부분 혼자 기거하는 60~90대 노인들이다. 이들은 노환으로 거동이 자유롭지 못하거나 지병이 있어 식사를 스스로 만들기 어렵다. 이 아파트에는 300 세대 중 절반이 한인 노인들이다.
11시 20분 아파트에 도착했다. 여섯 가구 두끼 분량이 만만치 않아 미니 물건 운반용 카트에 음식 보온 가방을 얹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11층에 들러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에게 음식을 전달한 후 4층, 3층을 거쳐 2층으로 내려온다.
채씨가 음식을 들고 오는 매주 금요일이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문을 열어놓고 그를 기다린다. 여름에는 시원한 음료수를 건네주기도 하고 겨울이면 따뜻한 녹차를 건네기도 하며 안부를 묻는다.
오늘은 3층에 거주하는 90대의 박정선 할머니가 떨리는 손으로 직접 쓴 크리스마스 카드를 쥐어준다. 카드에는‘사랑하는 우리 집사님 올해도 힘든 일을 변함없이 하시며 수고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늘 따뜻한 밥을 먹고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마지막으로 들른 208호에는 10여년전 백내장과 당뇨로 실명한 장정숙씨(78)와 남편 장원철씨(79)가 채씨를 반갑게 맞는다.
남편 장씨는 부인을 간병하고 수발하다 “나이가 들어 음식준비가 쉽지 않아 5개월전 부터 식사배달 서비스를 받고 있다”며 “날씨가 궂을 때도 마다않고 음식을 배달해 주는 채 집사님이 너무 고맙다”고 인사했다.
한 달에 한번은 거동이 불편해 바깥 출입이 어려운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위해 떡도 사다 드린다.
“음식 배달에 나서며 오히려 제가 인생을 배워요. 제가 전하는 작은 사랑이 더 큰 사랑으로 되돌아와 인생의 소중함,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음식배달을 마치고 메릴랜드 집으로 돌아가는 그의 등 뒤로 겨울햇살이 따사롭다.
<정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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