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에 한번 자원 봉사하는데 인터뷰는 무슨... 더 열심히 자원봉사 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서영임(사진.75세, 실버스프링 거주) 할머니는 기자가 게이더스버그의 워싱턴한인봉사센터 메릴랜드 사무실을 방문하자 쑥스러운 듯 말문을 열었다.
“도움을 받아야 할 나이에 자원봉사로 새 삶을 사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기자가 말하자 “봉사를 통해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서 할머니는 1970년 베이비 시터(보모)로 혼자 미국에 왔다. 가정부, 요리사, 캐리아웃 운영 등을 하며 억척 같이 생활하다가 2004년 4월 73세에 은퇴했다.
은퇴 후 우연히 봉사센터가 주최한 사회복지세미나를 듣고 상담차 봉사센터를 들렀다가 80대 노인이 자원 봉사하는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아 2005년 2월부터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서 할머니는 매주 월요일 봉사센터에서 전화도 받고 복사도 하며 쓰레기통도 비운다. 또 복지세미나, 금연세미나 등 봉사센터 행사가 있을 때면 교회, 한인 마켓 등을 찾아다니며 홍보 전단을 붙이기도 한다.
지난 2년 반 동안 봉사센터에서 자원봉사 하면서 미국 사회보장제도를 배우고 자원 봉사하는 기쁨에 푹 빠졌다.
서 할머니는 “요즘은 월요일이 기다려진다”면서 “중학교 밖에 졸업하지 못한 내가 은퇴 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게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자신을 ‘전쟁아(戰爭兒)’로 소개한 서 할머니는 1941년 태평양전쟁과 1950년 한국전쟁 때문에 중학교도 겨우 졸업했다. 하지만 77년 영주권자로 아들을 초청해 메릴랜드 대학을 졸업시키고 지금은 대학에 다니는 손자가 두 명이나 된다.
서 할머니는 자원봉사를 하지 않는 날에는 한인노인들을 만나면 자신이 봉사센터를 통해 혜택을 받은 적격자 의료보조 프로그램(QMB), 약값 보조, 푸드 스탬프, 에너지 보조프로그램, 재산세 감면 프로그램, 푸드 보조프로그램 등을 소개한다.
서 할머니는 “평생을 먹고 살기 바빠 누구를 위해 봉사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지 못했다”면서 “봉사를 시작하면서 몸은 조금 고단할지라도 마음은 항상 즐겁다”고 말했다.
봉사센터에서 일하면서 안타까움을 느낄 때도 있었다.
4-5개월 전 복사기가 고장이나 봉사센터 직원들이 복사도 못하고 있을 때는 “내가 돈만 있다면 복사기를 사주고 싶었다”는 것.
서 할머니는 1주일에 세 번은 수영, 세 번은 걷기 운동, 하루는 봉사센터 봉사, 이틀은 메릴랜드 상록대학에 출석하며 어느 젊은이보다 바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이창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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