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년간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신 동포들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떠나도 한인회를 위해 계속적인 사랑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김영근 회장(사진)이 워싱턴 한인연합회장 직에서 물러났다.
2003년, 40대 중반의 나이에 제31대 회장으로 취임한 그는 재선에 성공하며 꼬박 4년간 애난데일의 한인회관을 지켰다.
그에 대한 평가는 전반기와 후반기로 뚜렷이 나누어진다.
31대 당시 그는 역대 어느 회장보다 정열적으로 일하며 한인회의 위상과 역할을 극대화시켰다는 평을 들었다.
드라이클린 디포 공청회, 웅담 및 산삼 파동 등 한인사회 중요 현안이 대두될 때마다 팔을 걷어 부치고 동포사회 여론을 환기하는 한편 해결사로 나서기도 했다. 또 주류사회를 상대로 한인사회의 여론을 전달하는 적극적인 역할도 맡았다. 또 한인우대 카드 정착, 영사업무 대행 등을 통해 동포사회에 서비스 수준을 넓히고 재정 안정화를 꾀했다.
특히 한미축제를 신설, 한인사회 최대의 연례축제로 정착시킨 공을 높이 인정받고 있다.
김 회장도 재임 중 가장 보람 있던 일로 한미축제의 성공을 꼽는다. “공원과 학교, 샤핑몰에서 축제를 개최하며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가슴이 찡했습니다. 무엇보다 한미관계가 복잡할 때 워싱턴에서 4년간 축제를 계속 열 수 있었던 게 자부심으로 남습니다.”
이에 비해 후반기인 32대 재임 시는, 그 자신도 인정하지만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쉽게 여기는 건 회칙 사태로 전직 회장 등 원로들과 등을 돌리게 된 점.
“전임 회장들과 동포사회의 여론을 충분히 수렴 못한 상태에서 회칙 개정을 시도한 점이 후회스럽지만 아직도 제 생각이 올바르다고 생각합니다.”
이밖에도 그는 공약사항이기도 했던 총무 유급제를 재정사정으로 끝까지 시행하지 못한 점을 못내 아쉬워한다.
“한인회가 발전하려면 유급 총무제를 실시하고 팽창한 한인사회 규모에 맞춰 상설 사무국을 두어 확장 이전해야 합니다.” 그는 동포사회와 김옥태 신임 회장단에 대한 부탁과 조언도 잊지 않았다.
“한인회에 몸담은 사람들은 보다 자기 헌신이 필요하고 동포사회는 한인회를 중심으로 한 목소리를 내줘야 권익을 더 찾을 수 있습니다.”
한인회의 대표성과 역할을 인정해주고 힘을 몰아달라는 주문이다.
새해부터 그에겐 한인회장 대신 두 가지 타이틀이 따라 붙는다. ‘코암부동산 사장’이란 직업인으로서의 명함과 ‘세계한인회장대회 공동의장’이란 대외적 직함이 그것이다. 그는 2005-6년 연속으로 세계한인회장대회 의장에 선출돼 재외동포들의 위상을 제고하는데 보이지 않는 공헌을 남겼다.
앞으로 그는 사업도 열중하겠지만 동포사회 봉사도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내 인생에서 가장 활동적일 때 한인회장으로 봉사했습니다. 앞으로도 뒷전으로 물러나 있지 않고 작은 단체에서 저의 경험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달려가 도와줄 생각입니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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