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새해라서가 아니다. 21세기 문턱에서부터 세상은 ‘여성성’이 다음 세기의 키워드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새로운 세기엔 여성들이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이며 심지어 여성들이 남성중심사회의 장막을 걷어내고 그 우위에 설 것이라는 ‘불온한’ 소문들도 퍼져나갔다. 그뿐인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인생 선배들은 베스트셀러 제목처럼 여성들에게 남자처럼 일하고, 사고하고, 성공하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이젠 달라졌다. 남자들도 ‘남자처럼’만 일해서는 성공할 수 없는 시대가 온다는(혹은 왔다는) 것이 아닌가. 더 이상 거나한 술자리와 사우나에서 조직력을 다지고, ‘시키면 한다’ 식의 상명하복으로 버무려진 남성중심의 조직문화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에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남성들도 내린 듯하다. 물론 이는 여전히 사회 주류인 남성들이 여성을 키워보겠다는 도덕적 혹은 역사적 사명을 띤 ‘기특한’ 의지라기보다는 21세기의 고부가가치 생산물들은 주로 창의성과 유연성이 중시되는 신지식 산업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신 지식산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선 더 이상 남성성만을 고집해서는 될 일이 아니라는 벼랑 끝 위기의식이 본능적 방어기제로 작동한 것이다.
그렇다고 여성성을 앞세워 이 시대 남성들을 싸잡아 폄하할 생각은 결코 없다. 아니, 오히려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들보다 더 확실하게 폭압적 남성성에 굴복하고 재생산할 것을 강요당하는 그들에게 가슴 뜨거운 연대를 보낸다.
푸르다 못해 시퍼런 열정이 뚝뚝 떨어지는 스물 몇 살의 반짝이던 사내들이 사회라는, 특히 한인사회라는 혹은 한인 직장이라는 가부장적 사회 속에 편입하면서 겪는 일상은 눈물겹다.
사회선배들은 그들이 배웠던 것처럼 상명하복의 관계에 이들을 편입시키기 위해 대부분의 월급과 시간을 할애한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었다가 다시 필요하면 내일의 파트너가 될 수 있는 놀라운 기술을 전수하며,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어떻게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은 물론 눈곱만큼의 죄책감 없이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정글의 법칙을 단시간에 설파한다. 평양 교예단의 서커스보다 더 현란한 기교와 테크닉 앞에 시퍼런 청춘은 처음엔 당황하다 결국은 양자택일의 장엄한 순간을 맞는다. 순응하거나 도태되거나.
한인사회 덩치가 커지면서 한인기업과 단체로 1.5세와 2세들의 유입이 가속화된다는 것은 이제 구문이 돼 버렸다. 내 자녀는 이 말도 안 되는 조직문화가 판치는 한인사회에서 일한다면 결사반대지만 내가 앉은 곳에선 당연히 그렇게 해야만 조직이 굴러가고, 일이 된다고 믿는 당신이라면 불행히도 21세기는 당신의 무대는 아닌 듯싶다. 이민 100년. 한인사회도 이젠 상식이 통해도 되는, 21세기 여성성의 흐름에 부응해도 되는 나이가 됐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주현>특집 2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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