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와 냉장고
몇 일 전에 나의 컴퓨터가 파일(document)이 열리지 않고 인터넷이 제대로 되지 않아 규칙적으로 하던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마음이 편치 않은 채로 잠이 들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부엌에 가보니 바닥에 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아이들이 냉장고문을 제대로 닫지 않아 얼음이 녹았나 했는데 냉동실을 열고 보니 처마에 매달려 있던 고드름이 햇빛에 녹아 내리는 듯 물이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모터는 돌아가는데 전혀 차갑지 않은 것이었다. 구입한 지 갓 5년을 넘어서 워렌티 기간도 얼마 전에 끝이 났다. 우선 바닥에 물기를 닦아내고 냉동실 안에 남아있는 얼음을 다 꺼내었다. 그리고 웬만한 식료품은 정리하여 버렸다.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일을 정리하느라고 분주한 아침을 보내고 직장으로 나갔다. 그런데 온종일 마음이 우울했다. 무엇인가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 있는데 꼭 무엇이라고 집어낼 수가 없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편리주의와 편의주의의 현대문화에 많이 길들여져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겨울 방학이라서 집에 와 있는 큰 아이가 3일이나 나의 컴퓨터의
바이러스 클리닝 하고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아도 정상적으로 작동이 되지 않았다. 평상시에는 아이가 곧 잘 나의 컴퓨터의 문제점을 해결해주었는데 이번에는 잘 모르겠다고 손을 들었다. 결국 랩탑을 들고 친분이 있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게 들고 갔다. 그분이 몇 시간 동안 시험하더니 컴퓨터가 작동이 되기 시작했다. 이유는 막내 아이가 자기 컴퓨터가 느려지니까 나의 컴에다 이것 저것 다운로드를 받으면서 전문 엔지니어가 아니면 삭제하기 힘든 바이러스가 생긴 것이었다.
몇 일 동안 컴퓨터와 냉장고로 인하여 불편을 겪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컴퓨터가 없을 때는 사실 컴의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했는데 이제는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되어 버렸다. 컴퓨터의 역사가 냉장고의 역사보다는 짧지만 도대체 컴퓨터 없이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할 수가 없이 되어버렸으니 나도 컴퓨터 중독일까. 거의 모든 작업을 컴퓨터에 의존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만큼 컴퓨터는 생산적이고 창조적이라는 예찬론을 부르짖게 되어 버렸다. 특히 메신저를 통하여 날마다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어서 전화 통화료를 절약할 수 있지 않은가. 더욱 카메라를 설치하면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할 수 있으니 거리감을 줄일 수 있지 않은가. 또한 가족 홈피를 만들어서 수시로 방문하여 흩어져 사는 가족의 현황을 즉각적으로 알아보고 마음으로 함께할 수 있기도 하니 지구촌 어디에서나 가족간의 친밀감 유대감을 키워나갈 수 있지 않은가.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나는 컴의 이런 편의를 다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옆에서 그렇게 사용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컴퓨터라는 편리문화의 혜택에 대해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컴퓨터로 인한 상대적인 부작용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익히 알고 있다. 어른들이야 분별력 있게 선용할 수 있지만 좋고 나쁜 것을 의지적으로 결단할 능력이 없는 어린아이들이나 틴에이저가 문제다. 무엇인가에 집중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아이들에게 부모들의 역할이 정말 어려운 세대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보의 홍수로 일어나는 정보체증이나 잘못된 정보로 인한 진리의 왜곡은 이 시대에 어느 누구 책임질 수 있을까.
물론, 어느 시대에나 문제가 없는 시대가 없었다. 지금 주어진 버튼 문화가 부작용을 준다 하여서 그 버튼 문화가 없는 시대로 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즉 냉장고 없이 사는 삶과 같다고나 할까. 이미 많은 분들이 버튼 문화의 장단점을 논하였지만 컴을 악용하여 자기만의 이익을 추구하기에 급급한 사람들이 경각심을 갖기를 소원한다.
자신들도 자기의 아이들을 생각하여 좀 더 건전하고 미래지향적인 프로그램들을 생산해 내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다음 세대에 어떤 문화 유산을 전할 것인가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의 심각한 과제로 삼고 함께 고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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