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조미경(주부)
세상에는 남성과 여성과 그리고 아줌마가 있다 했던가? 또 하나의 성으로 구분되는 아줌마성은 아마도 남편과 아이를 위해서라면 염치도 창피도 모르는 막무가내를 빗대어 지어낸 이야기꾼들의 유머이리라. 서울 사는 친구의 딸 아이는 도저히 엄마와 같이 버스를 못 타겠다는데, 이유는 몇 번 타본 버스 노선도 기사 아저씨 불러 얼굴을 보고 어디 소방서 앞에 서냐고 다짐을 받는데 그것도 꼭 버스에 올라 타서 그런다며 얼굴을 붉힌다고 한단다.
내가 좋아하는 아줌마 하나를 따라 다니다 보면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 예를 들어 아메리칸 홈 스타일 레스토랑에 가서 서빙하는 종업원에게 ‘니 셔츠 색깔 오늘 환상적이다.’ 하면 갓 구운 머핀 한 접시가 덤으로 딸려 온다든가 하는 식이다. 예전에는 어디 가서 물 한 컵도 달래 먹기 힘들었을 법한 외모의 소유자이었는데 본인의 말대로 나이 따라 주접도 늘었다 한다. 아줌마 이야기 나온 김에 몇 사람 더 소개해 볼랜다.
아줌마 2는 다른 사람 걷어 먹이는데 이력이 난 사람이다. 성경에 나오는 마루타 같이 온갖 부엌일 맡아 하고도 맛있는 주 요리가 사라질 때까지 빈 젓가락만 휘휘 젓다가 남은 음식 처리하는 사람이다. 꼭 큰언니 같은 사람이다.
아줌마 3은 야멸차다. 똑소리 나는 사람인데 가끔 이러쿵 저러쿵 아줌마들 입담에 휘말리긴 해도 나의 길을 가는 형이다. 하고 싶은 일 못하는 법이 거의 없다. 가족 챙기는 일은 누구도 못 말린다. 베이 지역 한인 업소록이 없다면 이 아줌마에게 상의하면 된다.
아줌마 4는 눈치가 일본 각시인형 같다고 스스로 밝힌 사람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나 감정을 나보다 먼저 알아챈다. IQ도 높지만 EQ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녀 앞에 서면 바로 마음을 비우게 되는데 마음이 너무 고와서 흩트려 놓고 싶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줌마 5,6.7….시리즈는 너무 많고 재미나므로 다음 기회로 둔다.
나? 아줌마 ××는 남편 표현대로 철없는 아내다. 오래 전 후배 남편과 인사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는데 후배 남편이 인사치레로 ‘집 사람이 육남매의 막내라서 철이 좀 없습니다.’라고 했을 때 ‘우리 집 사람은 팔남매의 막내입니다’하고 선배의 철없음을 종신 서약해 주었었던 남편이다. 그 이후로 나는 쭉 철없는 아내에, 선배에, 아줌마이다.
세상에 남자 여자만 남고 구박 받는데 이골이 난 아줌마들이 동화 속 피리소리에 끌려서 전부 사표 내고 어디어디 산골로 몽땅 숨어 들었다고 생각해 보자. 세상살이가 그야말로 쿨하고 서정시 같으리라고 생각한다면 천만에 만만에 콩떡일 것이다. 세상 남자들은 여자만 남아서 즐거우리라 생각되시겠지만 아마도 머지않아 곧 아줌마의 넉넉한 맷집이 그리워지지 않으실까 한다. 밥 많이 먹는다고 눈치 주는 남편님들 아줌마 저력은 밥 힘입니다. 말 많다고 도망가는 아이들아, 아줌마 잔소리 뭐 별로 틀린 말 없단다.
구십의 나이를 바라보는 나의 어머니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곱다. 새 달력을 받으시면 1월부터 12월까지 어머니의 시할아버지 기제사부터 팔남매 생일과 며느리, 사위 생일 그 밑에 딸린 헤아리기도 벅찬 손자 손녀 그리고 증손 생일까지 빼곡히 적어 넣으시고 잊지 않고 챙기시는 슈퍼 할머니이다.
요즘은 눈이 어두워지신 구순의 아버지를 위해 아침마다 신문을 읽어 드리는 수고를 큰 즐거움으로 아신다. 어머니 눈길만으로도 아버지께서는 그야말로 음풍농월의 시절을 보내고 계신다. 아줌마가 할머니가 되면 그 넉넉함에, 앞뒤 재지 않은 사랑에 가족이 품어지는 법이다. 혹시라도 머리 꼴이 그게 뭐냐며 매력 없어진 아줌마에 등 돌리고 동상이몽 하는 분들 있다면 모두들 아줌마에게 차렷! 경례! 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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