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죽는다.”고 고속 원자로 개발 책임자인 아르곤 연구소의 한인 과학자가 1990년대 중반 했던 발언이 새삼스럽게 들려온다.
당시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의혹이 제기될 때였다. 원자로 사고 발생시 아무런 피해 없이 자동으로 폐쇄되는 고속 원자로 프로그램 책임자였던 한인 과학자의 답변은 너무나도 간단명료했다.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절대 용인하지 않을뿐더러 말을 듣지 않을 경우 무서운 결과가 초래될 것임을 암시하는 말이었다.
6자 회담에 의한 60일내 북한의 영변 원자로 폐쇄 합의는 한반도의 평화와 국제질서에 대한 단면도를 보여주고 있다.
민생 문제가 걸린 북한으로서는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북한의 주요 핵시설 폐쇄는 일단 남한의 우리 부모와 형제자매들은 물론 북한 동포들이 함께 대량 살상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점에서 크게 환영할 일이다. 북한은 이번 선택으로 고립에서 벗어나 중국과 미국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정치 및 경제 질서를 이루어 가야 할 기회를 맞이했다. 경제 강국의 대열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남한과 민족적 차원에서 덕을 보고 있는 북한이 핵무기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현실적으로 없다고 봐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라크의 경우처럼 미국이 선제공격이라도 한다면 북한이 쑥대밭이 될 뿐만 아니라 한반도에 어떤 후유증이 있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북한이 이미 개발한 것으로 간주되는 핵무기에 대한 내용이 합의문에 들어있지 않다는 점에서 북한 핵문제에 관한한 아직 갈 길이 먼 상태다. 6자 회담 합의문에는 북한이 추가로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는데 대한 보상 내용이 포함돼 있어 기대가 되지만 구체적인 합의 이행 과정에서 또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6자 회담 당사국 모두의 합의사항 실천과 인내가 요구되고 있다.
북한의 핵시설 폐쇄는 6자 회담 당사국들인 미, 중, 러, 일 4강대국과 남한과 북한 모두의 이해관계의 합일점이다.
경제제재와 선제공격이라는 채찍과 중유 공급 및 관계개선이라는 당근을 든 미국의 입장에서 이번 합의는 무혈의 전쟁 승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달 약 1백억 달러의 전비가 투입되고 있는 이라크 전쟁을 생각한다면 북한의 핵시설 폐쇄에 대한 보상액 패키지 3억 달러는 우려됐던 북한과의 전쟁 비용과 사상자 발생숫자를 감안한다면 아무 것도 아닌 셈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시설 및 핵무기개발 프로그램을 최첨단 전투기 한두 대 값으로 산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의 일부 군사전문가들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한 중국의 미온적 입장을 북한으로 하여금 중국의 방위 최전선 배치라는 개념으로 해석하기도 했으나 이번 합의로 결과적으로 미국에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중국은 인접국가에서의 핵무기 보유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6자 회담 과정에서 북한과의 대화에 의한 해결을 강조하며 북한측 입장을 배려했던 중국은 북한이 지하 핵실험을 실시하자 가장 강하게 반발하며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했었다. 마지막 6자 회담 과정에서 중국의 입김이 많이 개입된 것으로 볼 때 앞으로 북한은 중국의 우산 아래 그 영향력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대포동 미사일 발사에 경악했던 일본은 이번 합의로 한시름 놓게 되었다.
이번 합의는 한반도에 4대 강국의 안보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린다는 점을 더욱 부각시키며 한반도의 핵무장은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에 의해서도 안된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경고한 셈이다. 즉 다시 한 번 한민족의 생존과 번영에 관한 4강의 역학관계 활용에 과제를 안겨주었다.
한편 북한의 주요 핵시설 폐쇄 합의는 기존의 핵 무장국가들인 3강대국과 핵무기 개발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일본에 의한 압박의 결과라는 점에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질서를 실감케 했다. 또한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출간 이후 민족적 자존심이 높아진 한국의 정서로 볼 때 일본과 중국에 맞서는 핵을 보유한 강력한 한반도 출현을 바라는 한국인들의 희망이 일단 꺾였다고 볼 수 있다.
<최용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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