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숨 쉬는 곳
어느덧 봄의 문턱에 와 있는 것 같다. 눈 앞에 보이는 벌판에는 새싹이 돋아 파릇파릇해졌고, 저 멀리 언덕 위의 나무들은 온통 초록 계열의 옷들로 갈아입었다.
내가 일상에 파묻혀 숨가쁘게 하루하루를 사는 동안 자연은 조용하게 자신들의 할 일을 묵묵히 해 나가고 있는 것 같다. 문득문득 고개를 들어 나의 세상이 아닌 본래의 세상인 자연을 바라보면 그 경이로움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얼마전엔 이 자연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하며 감격하는 시간이 있었다.
우리 가족에겐 몇 평 되지는 않지만 아주 의미있는 작은 텃밭이 하나 있다. 한국의 농촌에서 볼 수 있는 넓은 마당에 자리잡은 텃밭은 아닐지라도 우리에게는 참으로 소중한 공간이 되었다. 그건 바로 잘 자란 배추와 무 덕분이다.
몇 해 전부터 가꾸어온 이 텃밭엔 우리 가족의 땀과 노력이 고스란히 숨어있다. 나는 태어나서 밭일이라곤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었지만 여러 사람의 말을 참고하고 인터넷으로 찾아가며 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들은 아무것도 없는 초라하고 볼품없는 땅에서 열심히 일하는 엄마가 이상해 보였는지 “엄마, 지금 뭐해? 아무것도 없는데….”라는 말을 곧잘 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여러 종류의 씨앗을 뿌렸건만 제대로 결실을 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씨앗을 뿌려 얼마 안 있어 새들의 모이가 되거나, 몇 주가 지나 단단한 땅을 뚫고 돋아나온 여리고 약한 싹들은 다람쥐의 먹이가 되기가 일쑤였다. 개중에 그나마 자란 싹들도 어느 정도 자라다가는 성장을 멈추어버렸다. 이런 일들을 지켜보자니 너무 힘이 빠지고 화가나 괜히 주위에 있는 다람쥐나 새들을 미워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기를 몇 차례 반복하고 나서 작년 가을 초에 이웃에 사는 어떤 분에게 배추와 무 씨앗을 받았다. 그리고 씨앗을 바로 심기가 겁이 나 집에서 모종을 해서 밭에 옮겨 심었다. 그렇지만 이미 수 차례 실패와 좌절을 맛보고 나서인지 별로 기대도 되지않고 그냥 심었으니 키워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몇 주가 지나자 더 크게 잎이 자라고 줄기가 자라기 시작했다. 전에 비해 관심을 많이 갖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자라는 배추와 무를 보니 새로운 흥분과 기대가 더해갔다. 그리고 몇 달이 흘러 얼마 전에는 잘 자란 배추와 무를 수확하여 김치를 담그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이런 기분을 처음으로 느껴보는 난 그 작은 씨앗 속에 숨겨져있던 생명의 신비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눈에 보기에는 너무 작고 초라한 그 씨앗 속에 엄청나게 강하고 큰 생명력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로지 자연이 주는 햇빛과 물만으로도 씨앗의 모습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생명이 살아 숨을 쉬는 곳 그 속에서 나도 나의 새로운 모습을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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