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공부를 제대로 못했던 게 사무쳤는데 이제 어엿한 고교 졸업장을 받으니 꿈만 같습니다.”
지난 1월30일 훼어팩스 소재 웃슨(Woodson) 고등학교 강당에서는 특별한 졸업식이 열렸다.
이날의 주인공들은 19세 이상이 다닐 수 있는 어덜트(Adult) 하이스쿨의 졸업생들.
졸업장을 받기 위해 단상에 오른 평범하지 않은 학생 중에서도 최고령자인 한인 고 모 할머니의 감회는 남달랐다.
졸업장을 손에 쥔 고 할머니는 벅차오르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활짝 웃음을 터트렸다.
만 75세. 적어도 ‘배움에도 때가 있다’는 말은 고 할머니에는 통하지 않았다.
1970년대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후 여러 직장을 전전하면서도 학업에의 열정은 식지 않았으나 흘러가는 세월은 속절없었다.
그러다 훌쩍 일흔이 다 되었고 시간의 속박에서 벗어난 할머니는 마침내 결심을 했다.
“사회생활 할 때는 시간이 없어 못했어요. 은퇴하고 나니 시간 타령보다는 내가 노력만 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다. 한번 해보자는 마음에 수소문해 성인 클래스에 등록했어요.”
지금이야 담담하게 말을 꺼내지만 남들은 손주 재롱이나 볼 나이에 그것도 영어로 수업을 듣는 학교를 다니는 게 만만치는 않았을 것이다.
고 할머니는 직접 차를 몰고 일주일에 두 번씩 저녁 강의를 들었다. 영어에 수학, 미국 역사… 정규 고교 과정의 과목 대부분을 이수해야 했다.
“외워도 자꾸 잊어먹고 하니 힘들었어요. 중간에 그만둘까 마음속 유혹도 많았지만 그 동안 공부한 게 아까워 포기할 수 없었어요.”
동급생들 대부분은 20세 남짓의 손자뻘이었고 어린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학교생활을 한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한국 사람도 없어 궁금한 건 할머니 혼자서 해결해야 했다.
그래도 부끄럽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한다.
“남의 나라 살면서 그 나라 말을 어느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모르는 것을 배우기 위해 나간 만큼 창피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지요.”
오랜 만학(晩學)의 꿈을 이룬 고 할머니는 고교 졸업장에 만족하지 않고 올해 노던 버지니아 커뮤니티 칼리지에 진학할 계획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며 배움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뿜어낸 고 할머니는 “내 이야기는 세상에 알릴 게 못 된다”고 손사래를 쳤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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