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와이 한인이민 104주년 특별 연재, 빅 아일랜드 해리 김 시장의 가족 이야기
▶ 맹도티 쉬러 저, 신명섭 교수 역
그런데 어느 날, 나와는 그저 면식이 있는 정도인 급우가 네 자리 떨어져 있는 내 책상으로 오더니 책을 읽고 있는 중인 나를 가로막고 백홍색 드레스를 허리까지 끌어내리면서 하는 말이, “이거 봐, 나 비단옷 입었다”라는 것이었다.
나는 예의바르게 그 애를 보고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넌 비단옷 없지. 네가 실크 드레스 입은 걸 본 적이 없으니까.” 성이 안 찬 그 애가 또 하는 말이었다.
난 그보다는 독서가 더 재미있어서 다시 책을 들었다. 어슬렁어슬렁 다른 쪽으로 걸어가는 그 애를 보니까 실성한 애가 아니냐 싶었다.
전쟁 때문에 음식도 아껴야 했다. 미세스 던컨이라는 교장선생님은 학교에서 “음식낭비금지”라는 원칙을 실시했다. 선생님들까지 포함해서 교장선생님의 말을 어기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분은 학교를 완전히 통솔했다. 교장선생님은 공정한데다가 위트까지 있는 분이어서 나는 맘에 들었다.
하지만 그분은 음식찌끼 통 옆에 서서 엄격히 감시했다. 낭비는 절대금지였다.
몇몇 학생은 전쟁과 식량절약에 관한 훈계를 받고 카페테리아 식탁으로 되돌아갔다.
그때 1학년이던 한성이는 카레 음식냄새를 역겨워했다. 카레가 나오는 날은 건드리지도 않고 그냥 앉아서 울었다. 그러면 열두 살인 언니 윤성이가 옆으로 바짝 가서 다 식은 동생의 몫을 억지로 다 먹어주었다. 학교에서 카레가 나오는 날이면 언니가 그렇게 동생 옆에 앉아 있었다.
수정(修正)형 채식가인 나도 카레 음식은 역겨웠다. 다행히 나는 카레를 너무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서 점심에 카레가 나오는 날은 반드시 그 애 옆에 가 앉았다. 집에 가면 부모님들 앞에서 학교음식이 어떻고 비단옷이 어떻고 하는 따위의 시시한 얘기는 전혀 꺼내지 않았다.
어머니는 군인들 몇 사람이 흙 묻은 옷을 더플 백에 넣어가지고 오면 세탁을 해주셨다.
옷은 일단 손으로 먼저 빨고 뜨거운 비눗물에 흠뻑 담갔다가 하나씩 꺼내서 나무세탁대에 올려놓고 북북 문질렀다.
그때는 보통 세탁한 옷을 빨래 줄에 걸어서 말렸다. 다림질은 욕조 밑 아궁이에서 꺼낸 시뻘건 숯불 덩어리를 아이론에 넣어서 하다가 식으면 또 뜨거운 숯을 바꿔 넣었다.
간간 밀랍 질이 많은 바나나 잎에 다리미를 슬쩍 대면 옷에 달라붙지 않아서 어머니는 그 방법을 이용하셨다. 그런 다음 풀을 먹여 빳빳하게 다린 유니폼을 찾아가는 군인들은 싱글벙글 기분이 좋았다. 그들은 이미 우리 집과 친구가 된 사람들이었다.
한 번은 지미라 부르는 우리 개가 식탁 아래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때마침 어떤 군인이 옷을 찾으러 부엌에 다다를 즘에 동물애호자가 못되는 순이 언니가 얼결에 개더러 “지미야, 나가!”라고 소리쳤다.
그 통에 그 군인은 질겁하고 또 그의 놀란 얼굴을 본 언니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몰랐다.
군인들은 뚜뚜 맨네 도살장 반대쪽 창고를 감자 같은 물품보관소로 이용했다.
감자는 아마 기차로 운송해 왔나본데, 철로 옆으로 감자가 창고 주위에만 많이 흩어져 있는 게 그 증거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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