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에서 토플 지원자들의 혼란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이는 토플시험이 필기시험의 형태에서 인터넷을 통한 시험으로 바뀌면서 초래된 기술적인 제반시설의 부족과 외국어고 등 특목고의 입시전형에 토플이 요구되기 때문에 지원자가 늘어난 이유로 분석된다. 과거에 토플은 대학생들의 영어학습의 표준 교재 또는 미국과 영어권 유학 준비생들의 필수 영어시험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제는 영어교육열기와 더불어 초등학생까지도 학원에서 토플준비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토플시험을 보려는 지원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ETS에 지불하는 수험료 또한 만만치 않다.
이제는 초등학생과 중학생까지 예전에는 대학생들이나 성인들이 공부했던 토플을 준비해야 하는 이 과도한 현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한편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불고있는 영어열풍에 대해 비난의 소리도 종종 들린다.
과연 전국민이 그렇게 영어에 집착할 필요가 있냐는 질문이다. 사실, 전
국민이 영어를 사용할 당위성도 필요성도 없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는 우리에게 이 골치 아픈 영어라는 언어를 요구하며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가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앞으로 영어해독 능력이 있는 계층과 그렇지 않은 계층간의 문화/경제적인 불균형은 더욱더 심화될 것으로 보이며 이는 계층간의 갈등의 소지도 안고 있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영어가 이렇게 막강한 세계어로 영향력을 발휘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미 컴퓨터 전문 언어와 인터넷은 영어라는 언어가 점령하였고 세계의 주요 논문과 정보는 영어해독 능력이 있어야 즉시적이고 직접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앞으로 얼마나 영어의 영향력이 지속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당분간 이 추세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결국, 개인의 정보접근 능력의 차이가 개인간의 문화적, 경제적 격차로 이어질 것이다. 조선시대만 해도 중국 문자인 한문의 구사력은 과거시험 등을 통한 권력체계의 접근 수단 이였다. 언어와 문자 해독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한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을 넘어 한 사회의 정치경제적 요인과 복잡하게 얽혀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이며 교육학자인 부르디외(Bourdieu)는 서로 다른 사회
집단들의 문화생산물 사용과 사회 권력간의 복잡하고 본질적인 관계에 주목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중산층의 아이들은 그들의 부모로부터 자연스럽게 ‘문화자본’ (culture capital)을 획득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말하자면 문화자본은 문화적인 코드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지만 이 능력은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공정하게 분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문화자본’ 개념에는 언어적인 능력(linguistic competence)도 포함된다. 결국, 부모의 경제력과 교육 수준 등이 보이지 않게 아이들간의 문화적인 감수성의 차이를 만들어 가며 학교에서 학생들의 교육성취도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다.
한 반에 토플을 공부하는 학생과 ABC를 겨우 판독하는 학생들의 공존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는 우리사회에 ‘English Divide’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앞으로 국민화합과 교육적인 차원에서 국가와 사회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는 시급한 당면 과제이다. 공영방송 등을 통한 비용 절감적이고 효과적인 영어교육 프로그램의 확대, 능력 있는 영어 교육자들의 확보 등을 통해 ‘문화자본’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아이들에게 국가는 적극적인 기회를 부여하여 한다. 만인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가 정말로 참된 민주주의 사회가 아닌가? 하지만 앞날이 그렇게 밝아 보이지 않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jdlcom@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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