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수시로 거울을 본다. 그것은 우리가 손을 들여다 보듯이 우리의 얼굴을 직접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거울이 있기 전에는 물 속을 들여다보고 자기의 모습을 비추어 보기도 하였다. 그래서 물 속에 비친 자기의 아름다운 모습에 스스로 도취한 나머지, 죽어서 수선화가 되었다는 그리스의 신화 ‘나르시스’의 이야기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거울을 본다고 해도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는 것은 아니다. 거울에서 자기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나르시스처럼, 자기가 보고싶은 것만을 본다는 뜻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기가 원할 때에 거울을 들여다 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사진을 찍을 때와 비슷하다. 대부분은 우리가 원할 때에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진들로 앨범을 채워놓는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간직하고 싶어하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언제나 나의 모습을 본다. 나의 모습은 다른 사람의 눈에 장착된 ‘몰래 카메라’에 찍히듯이 거침없이 보여진다. 아름답지 않을 때의 모습, 슬프고 낙담한 표정, 혹은 놀라거나 진정으로 행복한 모습, 내가 미처 거울을 볼 사이가 없었을 때에 갑자기 찾아오는 감정의 기복 사이에서 내가 어떤 얼굴을 하는지, 맥을 놓고 있을 때의 얼빠진 표정이나, 심술맞은 얼굴, 그리고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어떤 표정까지도..... 그리고 옆모습, 힘없이 걸어가는 뒷모습, 어느 사이에 찾아온 세월의 흔적인 노인의 모습..... 그리고 우리들의 또 다른 모습. 예컨대 누군가 홀로 사색할 때의 품위 있고 매력적인 그 얼굴, 그리고 무심한 듯한 표정 속에서 불현듯 나타나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지닌 어떤 사람의 얼굴. 우리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사람들은 누구나 고상하고 아름다운 면과 추하고 미운 면을 함께 가지고 있다. 이것은 또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어떤 사람을 머릿속에 떠올릴 때에, 우리는 우선 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린다. 우리가 떠올리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가장 많이 보았던 그 사람의 표정일 것이다. 반대로 다른 사람이 나를 기억할 때에는 내가 그 사람 앞에서 가장 많이 보였던 표정과 태도가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는 때가 있는 것처럼, 나도 때와 장소에 따라서 다른 사람의 모습인양 비쳐지기도 했었을까. ‘몰래 카메라’에 찍히듯이 우리들 모두가 하루도 빠짐없이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찍혀지고 있다. 자기 자신의 마음에 꼭 드는 얼굴을 하고 거울에서 본다거나, 마음에 흡족한 사진만을 골라서 앨범에 간직한다고 하는 일은 이미 헛된 수고가 되는 듯 하다.
그러나 우리는 주위에서 완벽하게 훌륭한 얼굴의 표정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본다. 여러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감동적인 그 얼굴의 표정은 그냥 저절로 되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랜 세월을 닦아온 인격의 결정판이며, 그것은 거울을 보고 연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에게도 남이 모르는 결점이 있다. 그 결점이 습관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오랫동안 다듬어지고 향상되어지는 훈련이 있었다면, 다른 사람의 눈에 장착된 ‘몰래 카메라’가 있다고 할 지라도 전혀 겁날 일이 없는 것이다.
그리나 오늘도 나는 거울을 본다. 내가 보고싶은 것은 결국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끊임없는 우리들의 욕망이므로.... 내가 보고싶은 것만을 바라보는 것은 희망처럼 거울 속에 걸려있는 우리 모두의 바램일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그리고 이른 봄에 피어나는 수선화를 바라본다. ‘나르시스’가 죽은 후, 화사하게 꽃을 피워내는 수선화는 겨울동안 참고 기다리던 우리들의 가슴을 즐거움과 희망으로 가득 채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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