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슨 매컬러스의 원작 소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을 처음 영화로 본 것은 아주 오래 전 일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디즈니랜드의 환상의 세계쯤으로 어렴풋이 동경하던 시절에 만났던 이 영화를,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미국 남부의 조그만 도시의 여름, 풍경만 있는 정적 속에서 페이퍼 백에 담긴 샌드위치 점심을 혼자 먹고있던 한 귀머거리 청년의 눈빛으로, 그러나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산호세 도서관에서 다시 볼 수 있었다.
다시 본 그 영화는 뭉클했었다. 영화 중간 중간 소리 없는 영상만으로 편집되어 듣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의 모습과 마을 축제, 클래식 음악 같은 것들을 나 역시 귀머거리 주인공 싱어의 관점으로 느껴볼 수 있었다.
싱어를 좋아하게 된 다른 네 명의 정상인들 역시 마음에 외로운 섬 하나씩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를 찾아와 자신의 미래와 암울한 현실 같은 것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는데, 처음에 알아 들을 수 없던 그들의 말을 싱어가 이해하게 된 이유는 그들은 늘 같은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입술을 읽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좋아했음에도 결국 싱어는 자신과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던 절친한 농아 친구의 죽음 때문에 그 외로움을 감당할 수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이었다. 이틀 전 우리는 또 다른 외톨이(loner)를 만났다.
자신을 이스마엘이라고 불렀던 버지니아 테크의 한국 국적 학생이 부른 참극이 내내 마음 아프다. 아직 어린 얼굴이 남아있는 그 청년의 모습 어디에 그런 분노와 잔인함이 숨어 있었는지, 정신 나간 녀석이라고 일축해 버리고 말기에는 한국인이었다는 민망함에 더하여 그 여파가 크다.
3초에 10발을 쏠 수 있다는 반 자동 권총이 왜 보통의 사람들이 쉽게 사고 팔 수 있는지, 그리고 무기 거래 제한법이 어찌하여 번번히 의회에서 통과되지 않는지 로비스트들의 검은 세력을 따져 보는 것을 뒤로 하더라도 외롭고 고립된 영혼이 저지른 그런 폭력에 희생된 다른 어린 학생들 때문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늘 혼자 있던 학생, 항 우울증 약을 복용한 경험이 있는 학생, 폭력적 작문으로 따로 수업을 들어야 했던 학생이었던 그는 오늘 NBC에서 공개된 선언문(manifesto) 마지막 부분에서 단지 원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너희는 얼마나 많았는지, 벤즈 자동차, 금 목걸이, 꼬냑으로는 부족했느냐고 묻는다.
물질의 양극화가 21세기의 화두로 부상되고 있는데 그에 따른 정신의 양극화 역시 심각하게 짚고 가야 할 문제일 것이다. 전문가의 말을 따르면 자본주의적 생산 체계의 쾌락 추구 원칙은, 인간의 감각을 양극화하여 쾌락에 대한 내성을 극대화하고 고통을 요구하는 반성력을 극소화한다고 한다. 책임을 다른 대상에게 전가시키고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자신은 늘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극단적 생각이 이런 비극을 부른 것이다.
부모의 나이어서 그럴까. 아이에게 안정된 미래를 위한다는 미명 아래 밀고 강요하는 내 모습을 뒤돌아보게 한다. 현대 사회의 최대의 기대치인 물질적 풍요를 얻기 위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였던 정신적 빈곤에 대하여 방관한 것은 아닐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자라는 아이들과 함께 어떤 상황이나 위치에 있든지 최우선의 가치를 사람을 존중하는데 두어야 하고 혼자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 대한 겸손한 마음 가짐을 이야기 하는데 주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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