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 자식이 ‘착했으면’ 좋겠다. 퇴근해 집에 들어갔을 때 쉬고 싶은 아빠를 가만히 놔두는 ‘착한’ 아이였으면 좋겠다. 아빠에게서 TV 채널 선택권을 빼앗지 않는 ‘착한’ 아이라면 좋겠다.
그런데 이제 나의 바람을 접으려 한다. 내 자식이 ‘나쁜’ 아이이기를 바란다.
생각을 바꾼 계기는 ‘조승희 사건’이다. 버지니아텍 총격사건이 난 뒤 조승희를 기억하는 친척들이 기억한 말은 거의 비슷했다. “그렇게 착했던 아이가….”
한인에게는 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착한 것이 나쁠 것은 없다. 다만 한인이 강박관념을 가질 정도로 착해야 한다는 이유가 나쁠 뿐이다.
한인이 착한 건 다름 아닌 ‘고분고분하다’이다. 한인에게 착한 아이는 부모를 어렵게 해드리지 않고, 부모에게 노라고 말하지 않고 항상 예스라고 말하는 아이다. 그저 순종하고 절대 복종하는 것이 착한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이웃에게 자신을 다 내주는 진정한 착함이 아니다.
조승희를 보자. 세탁소를 경영하며 살아남기에 바쁜 부모에게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조승희는 너무 ‘착한’ 아이였다. 조승희가 고교 시절 다녔던 교회의 목사도 “외톨이었지만 착했다”고 기억한다. 교회에서 사고를 치지는 않았으니 착하게 보이지 않았겠나.
오죽하면 ‘착한 아이 증후군’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어려서부터 ‘착한 아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기에 어른이 돼서도 착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심한 자책감을 느끼게 되는 걸 뜻하는 용어다.
직장에서도 상사에게 고분고분해야 ‘착한’ 직원 소리를 듣는다. 자기 의견을 내면 ‘나쁜’ 직원이 된다. ‘나쁘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그저 소극적으로 머리가 땅에 닿을 듯 인사를 한다.
어떤 목사는 “우리 교회 사모님은 ‘정말 착하신 분예요’라고 말하는 성도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언제나 예하며 궂은 일을 도맡아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무 군말 없이 시키는 대로하면 착한 사모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가토 다이조 일본 와세다 대학 교수는 자신의 책 ‘나쁜 아이로 키워라’에서 “강요된 착한 아이는 사랑 받지 못할까 두려워 자신의 본성을 숨기고 착한 행동을 연기할 뿐, 내면 깊은 곳에서는 자신감이 없어 늘 남의 눈치만 살피고 불안해 한다. 그런 아이는 커서도 착한 어른을 연기할 뿐이다. 30~40대가 돼도 제대로 된 어른이 되지 못하는, 무슨 일을 해도 자신감 없고 늘 불안한 어른이 된다”고 적었다.
아이가 정말 착해서 부모 말을 잘 듣나. 부하가 정말 착해서 상사를 잘 따르나. 사랑 받기 위해, 또는 버림받지 않기 위해, ‘착한 척’ 연기하는 것뿐이다. 포장지만 예쁠 뿐, 알맹이까지 착하지는 않다.
나는 내 아이가 모범생을 연기하는 ‘착한 아이’보다 자신을 잘 표현하는 ‘나쁜 아이’가 됐으면 좋겠다.
김호성 특집2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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