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 칼럼 <수필가, 환경엔지니어>
“당신은 꿀벌을 아십니까? 혹시 수 십억 마리의 꿀벌들이 하룻밤 새 어디론가 증발해 버리는 대 실종(失踪)사건을 아십니까? 공상소설이 아닙니다. 최근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미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상 신드롬입니다. 21세기 생태계의 위기이자 미스테리입니다.”
지난주 뉴욕 타임즈에 난 톱 환경기사이다. 미국 꿀벌계의 25%가 붕괴되고 있다. 학계와 농업계에서는 이 사태를 ‘집단붕괴 이상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이라 칭하고 원인규명을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미상원 환경위원회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 근 9천만 불을 연구비로 책정했다.
옛날엔 물론 꿀을 얻기 위해 꿀벌을 키웠다. 17세기 청교도들은 유럽에서 벌을 들여와 꿀을 취하고, 벌집으로 양초를 만들었다. 그러나 최근 양봉업자들은 꽃가루를 옮겨주는 수분(授粉, pollination)이 제일 큰 사업 목적이다. 꿀벌은 사과, 배, 딸기 등 95종에 달하는 과실수를 열매맺게 해준다. 특히, 사과와 알몬드의 꽃가루는 90% 이상 꿀벌에 의해서만 옮겨진다.
꿀벌에 의한 농산물 생산은 미국서만 매년 150억 달러가 넘는다. 캘리포니아내 알몬드 생산량도 일년에 20억 달러이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식량의 1/3이 꿀벌을 위시한 곤충들의 꽃가루받이 덕분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꿀벌들에게는 꽃가루받이가 원래 목적이 아니다. 꿀을 얻으려 열심히 꽃을 전전하다가 암수술에 붙은 꽃가루를 다리에 묻혀 옮기게 되는 우발적 효과다. 허나 꿀벌이 자연의 섭리에 선한 도구로 사용돼 인류를 먹여 살리고 있음이 더 말할 나위 없이 신비롭고 오묘하다.
미국의 과실수 농사가 대규모화 하면서, 그 지역에 자생하는 꿀벌만으론 턱없이 모자란다. 그래서 미국 양봉업자들은 벌통들을 대형 트럭에 싣고 옮겨다닌다. 일종의 꿀벌 용병(傭兵) 기업이다. 용병 꿀벌들은 사과꽃 피는 3월엔 워싱톤 주로, 그 뒤엔 노스다코다 주, 플로리다, 그리고 텍사스 주 등 과실농사가 뮌?주를 돌아 1월에는 캘리포니아로 다 모인다. 알몬드 농장의 꽃가루받이를 위해서다.
그런데 어느 날, 꿀통 상자를 열어보니 용병 꿀벌의 반 이상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말벌이나 흰개미 같은 천적들의 공격을 받은 흔적도, 죽은 시체도 없다. 벌집내의 애벌레도 그대로다. 단지 여왕벌만 불안하게 꿀통 밖에서 배회할 뿐이다. 꿀벌들이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꿀벌들의 실종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곤충학자들은 장거리 이동시, 환경 변화에 따른 스트레스 때문에 집단사하는 게 아닌가 추측한다. 또 다른 학자들은 살충제(pesticides)에 의한 오염이나, 벌들에 인위적으로 투여하는 항생제의 부작용 등을 꼽는다. 최근 학설로는 벌들에게 먹이는 과당(果糖) 원료인 옥수수가 인공적으로 유전자가 변형된 까닭이라고도 하고, 심지어 셀률라 전화의 전파장 때문이라고도 한다. 공통적인 것은 대부분 인재(人災)에서 원인을 찾고 있는 것이다.
꿀벌들은 자연 원칙에 충실한 곤충이다. 여왕벌이 일분에 알 하나, 밤낮 산란해 일년에 2십만여 개의 알을 놓는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어김없이 새 여왕벌을 세울 정도다. 꿀벌들도 꿀을 거저 얻는 게 아니라 꽃에서 얻은 넥타르를 계속 소화하고 수분을 없애는 가공 과정을 거쳐 한 마리가 평생 1/12 티스푼 만큼의 꿀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꿀벌 대량실종 현상이 이들을 자연법칙에 어긋나게 다룬 우리 인간들의 책임 때문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점점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다.
이 세상에서 꿀벌이 멸종하면, 인류는 4-5년 이상 살지 못한다고 한다. 꿀벌이 사라지면 식물도 시들고, 동물도 죽고, 결국 사람도 멸종한다는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말이 지금처럼 심각하게 들린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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