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미 동부지역에 평양소주를 대행 판매할 ‘당스 리커’의 대표 당갑중씨, 평양시 무역관리부 평양소주 대외판매 책임자, 평양소주를 미국에 수입하는 ‘미주 조선평양무역회사’의 대표 스티브 박씨, ‘미주 조선평양무역회사’ 기획이사 배태섭씨.
재미동포 사업가 박일우(사진·58·미국명 스티브 박)씨가 지난 18일 맨하탄 자택에서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에 의해 한국 정부의 대북 ‘간첩’으로 체포된 사건은 수년간 갈등을 빚고 있는 한미 양국 정부 관계의 현주소를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하나의 구체적인 사례이다.
이번 사건이 박씨가 뉴욕에서 한국 정부 관리들과 공모해, 대북 첩보 활동을 벌였고 또 이 같은 활동을 모든 관계자들이 미국으로부터 계획적으로 감췄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미국 당국이 외교관들과는 달리 면책 특권이 주어지지 않은 미국 영주권자 박씨 개인만
을 검거했지만 사실상 검찰의 칼날은 한국인 박씨뿐만이 아니라 공모에 가담한 한국 외교관들을 비롯한 한국 정부를 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은 1996년 9월 당시 미 해군 정보국 군무원으로 근무하던 한국계 미국인 로버트 김(한국명 김채곤)씨가 주미한국대사관 무관에게 북한 관련 미국 국가기밀을 제공해 FBI에 체포된 사건, 2003년 2월 재미동포 예정웅(미국명 존 예)씨가 로스엔젤리스에서 북한 당국으로부
터 미국 국가기밀 입수 지령을 받은 북한의 대미 ‘간첩’으로 FBI에 체포된 사건과 등 한국계가 관련된 이전의 간첩 사건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첩보 활동 대상이 미국이 아닌 제3국인 북한이라는 점과 이 같은 활동을 미국이 처벌하고 나섰다는 점을 볼 때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더욱이 박씨의 경우 지난 10여년간 주유엔북한대표부는 물론, 북한을 자유자재로 방문하며 북한 고위급 간부들과 직접 접촉해온 것으로 알려진 인물로 만일 그가 실제로 한국 정부를 위해 대북 첩보 활동을 벌여왔다면 이번 FBI의 박씨 검거는 북한 정보 수집에 있어 한국 정부의 상당한 ‘자산’(Asset)을 차단한 것은 물론 한국 정부에게 미국에서의 북한을 비롯한 그 어느 국가를 대상으로 한 첩보 활동을 중단하라는 경고를 뚜렷하게 전달 한 결과를 낳았다.즉 미국의 이번 조치는 동맹국이라는 한국이 비록 미국이 ‘악의 축’으로 지목한 북한을 상대로 첩보 활동을 벌이더라도 만일 그 활동이 미국에서 이뤄질 경우 미국법을 엄격히 적용하겠다
는 것으로 한국과의 외교관계와 미국법이 상충되는 상황에서 외교통상적인 배려보다는 법을 앞세우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피력한 것이다.
미국이 동맹국인 한국을 상대로 이번 박씨 사건을 통해 취한 이 같은 조치는 법률적인 문제를 떠나 외교적 차원에서 볼 때 유사한 사건에 한국 정부가 취한 조치에 대한 대응 조치, 또는 한국 정부와의 정보공유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은 사례에 대한 불만 표출, 더 나아가서는 수면으로 떠오른 한국 정부와의 갈등에 대한 입장 공개 표명 등으로 확대 해석할 수 있어 그 동기가 더욱 주목된다.실제로 이번 박씨의 ‘간첩’ 사건에 앞서 이미 한국에서는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의 미국 스파이 의혹 사건이 지난 8개월간 한국 언론을 장식해 사실상 한국이 먼저 미국을 난처하게 했다.
신현덕 전 경인TV 공동대표가 지난해 10월31일 국회 국감 증인으로 출석해 “백 회장이 국내 정보를 수집해 미국으로 보내고 있다”며 백씨의 스파이 의혹을 제기해 시작된 이 사건은 한국 검찰이 조사에 나서 관계자들을 상대로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한국에서 어떤 조직원들을 활용해 어떻게 정보수집 활동을 하는지, ▲리차드 롤리스 미 국방부 부차관, 미국 벡텔사 한국지사 대표 등 미국 정부 고위 관리들과 미국 대기업 간부들의 한국에서의 정보 수집 활동, ▲주한미국대사관과 주한미군의 직접 개입 의혹 등을 집중 추궁하기도 했으나 조사결과 백 회장의 국가정보 유출 혐의에 대해 무혐의가 내려졌고 주한미군과 미국대사관의 스파이 사건 연루 혐의도 사실로 확인되지 않아 미국의 대응조치를 부를 충분한 이유를 제공했다.
이에 겹쳐 지난 3월 마이클 헤이든 미국 CIA 국장이 극비리에 방한했을 당시 한국에서의 행적이 언론에 상세히 소개되는가 하면 심지어는 이동 현장이 언론 카메라에 포착, 보도되는 사태까지 발생해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와의 정보라인 갈등이 극으로 확대되기도 했다.이외에도 유엔의 ‘이라크 석유 식량 계획’과 관련해 사담 후세인 정권 시절 이라크에서 수백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지난해 1월 FBI에 체포된 박동선씨의 사건은 FBI가 2005년 4월 공개수배를 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박씨가 한국에 거주하며 자유스럽게 스위스, 영국, 이태리, 헝가리, 일본, 말레이시아, 태국, 대만 등 해외여행을 해오다 지난해 1월6일 비행기로 캐나다에서 멕시코를 경유해 파나마로 향하던 중 멕시코 이민국의 협조로 FBI에 검거돼 미국과 한국과의 정보 공유 문제가 표면으로 드러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미국과 한국과의 정보 공유 문제는 미 연방남부지검이 박씨의 검거를 위해 지난 17일 법원에 제출한 기소청구장 및 체포·수색영장 발급 청원서에서도 드러나는데 청원서에서 FBI 수사관은 박씨뿐만이 아니라 박씨와의 접촉이 목격, 녹화된 한국 정부 관리 마져도 FBI에게 박씨와의 관계에 대해 거짓 진술을 한 것으로 밝히고 있어 박씨와 한국 정부 관리들이 계획적으로 미국을 속이려 한 점을 내세워 현행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근거를 성립하고 있다.그러나 이번 박씨의 한국 ‘간첩’ 사건에 있어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체포·수색영장 발급 청원서에서 FBI 요원이 자신은 2003년부터 특정인들이 미국의 관련 당국에 신고 또는 등록하지 않고 한국 정부의 ‘에이전트’(Agent)로 활동하는가의 여부를 수사해 왔다는 내용으로 FBI 수사의 초점이 주뉴욕총영사관과 주유엔한국대표부의 직원들, 즉 한국정부의 활동에 맞춰져 있었다는 점이다.
미국이 최소한 4년7개월전을 시작으로 동맹국인 한국 정부의 의도에 불신을 갖고 한국 정부의 미국 현지 공관 파견 외교관들의 활동을 집중 감시했다는 얘기다. 따라서 박씨의 경우 1990년을 시작으로 약 50여차례 북한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박씨의 일거수 일투족을 미행, 감시, 도·감청하는 집중 수사를 벌여온 FBI가 박씨에게 북한 관리들과의 접촉보다는 한국 정부 관리들과의 접촉에 대해 추궁했고 이에 박씨가 2005년 8월25일과 2007년 1월15일, 3월20일 등 3차례에 걸쳐 거짓말을 하자 실제 간첩 활동 혐의를 적용한 것이 아닌 3건의 ‘(미국) 정부 관리들에게 허위 진술’을 한 혐의로 기소청구한 것은 일단 박씨와 박씨를 접촉한 한국 정부 관리들에 대한 ‘괘씸죄’를 적용한 셈이다.
검찰은 박씨의 체포와 함께 박씨의 자택에서 수색영장을 집행, 컴퓨터와 전화 등을 박씨가 한국인들과 북한인들을 접촉한 기록을 입증할 수 있는 각종 전산, 통신 장비들을 압수해 그가 금전적 대가를 받고 미국에서 외국 정부를 위해 활동한 범죄 여부 및 공범들의 가담 여부를 파악 중이며 관련 증거가 확보되는 데로 추가 혐의를 적용하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그 동안 한인사회에서 알려진 박씨의 활동을 볼 때 검찰의 조사 결과 박씨에게 추가 혐의가 적용 될 경우 과연 그에게 한국의 ‘에이전트’, 또는 북한의 ‘에이전트’, 아니면 한국과 북한 양측을 오가며 활동한 더블 ‘에이전트’ 중 어떠한 ‘에이전트’로 활동한 혐의가 적용
될 지 주목된다.
<신용일 기자> yishi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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