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떠나려니 축구가 따라오네
한인 심판제 성공적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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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고문님, 왜 그렇게 안색이 좋으세요?!”
“뭐, 딴소리 하고 있네, 이 회장도 혈색 좋구만 그래. 다들 훤해졌만.”
지난 17일(월) 저녁 오클랜드 오가네식당. 샌프란시스코한인축구협회 유기형 고문은 이상호 회장과 조행훈 전 회장, 최원 전 회장, 구세홍 사무총장 등 후배들이 인사 겸 던지는 덕담에 껄껄 웃으며 맞불을 놓았다. 이 자리는 SF한인축구협회 주최 제13회 축구대회(8일, 프리몬트 JFK하이)에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협회의 정신적 지주로, 심판위원장으로 진땀을 흘린 유 고문을 위해 후배들이 마련한 감사만찬.
이유는 또 있었다. 이 회장 등 후배 축구인들이 축구라면 물불 안가리고 도와주는 유 고문에게 15개팀 선수들과 내외빈들의 박수 속에 증정하기 위해 감사패를 준비했으나 유 고문이 끝내 고사하는 바람에 전달에 실패해 이날 식사 자리에서 억지로라도 안기겠다는 ‘선배사랑 음모(?)’가 숨어 있었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였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이 회장이 기습적으로 감사패를 안기려 하자 유 고문은 극구 손사래치며 받지 않았다. 물러설 후배들도 아니었다. 주변사람들 눈도 있고 해서 유 고문은 반 보 양보했다. “받아놓기는 하겠는데 이건 아녀…” 읽어보지도 않은 채 유 고문은 취재기자에게도 신신당부했다. “이거 (받았다는) 얘기 쓰면 절대 안돼요. 뜻은 고맙지만 우리 선수들이 체전에도 못나갔는데…”
올해 예순여덟인 유기형 고문은 북가주 한인축구계의 산 증인이다. 1990년대 초 먼저 이민 온 부인이 “여기 잔디운동장도 많다”고 한 귀띔에 올까말까 고민을 딱 접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오자마자 한다 하는 축구인들을 수소문해 만나고 축구로 우정을 쌓아왔다.
그렇다고 유 고문이 선수 출신은 아니다. 70년대 ‘군대축구’가 그와 축구의 정식 만남이었다. 이후 축구의 매력에 빠진 그는 제대후 새마을운동본부 생활체육협의회 등에서 조기축구 실무담당으로 전국 축구장을 누볐다. 공인심판으로도 활약했다.
이번 SF축구협회장기 대회에서 그가 남긴 최대공적은 한인심판제 도입. 이 대회를 비롯한 여러 대회에서 판정시비가 잦아 “아예 한국말 욕지거리를 못알아듣는 외국인을 쓰자”는 게 대세가 돼왔으나, 유 고문이 “그럴수록 우리가 룰을 공부하고 심판을 제대로 키워야지 그거 무서워서 딴사람들한테 돈까지 줘가면서 맡긴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한인심판제를 고집해 관철시켰다. 심판요원들에게 규칙교육을 하기도 하고 전원 심판복과 깃발(선심) 등 구색을 갖추게 했다. 결과는 대풍이었다. 간혹 시비가 없지는 않았지만, 매우 의미있는 시도라는 게 한결같은 평가였다.
유 고문은 체전을 전후한 마음고생에 넌더리를 내며 “나 이제 더이상 축구장에 얼씬거리지도 않을 것”이라면서도 한인심판제에 대해서는 “우리가 꼭 살려나가야 한다, 그게 우리 자존심”이라고 강조했다. 축구와의 결별결심도 살짝 꼬리를 내렸다. “아니, (축구) 좋아하니까 아주 안볼 수는 없고, 구석에서 숨어서 (웃옷을 추켜올려 머리를 감싸는 시늉을 하며) 이렇게 구경할거야.”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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