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스펀 풋(put)이라는 용어가 있다. 주식시장이 어려울 때마다 그린스펀 전임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 의장이 구해 준다는 말이다.
원래 주식시장에서의 ‘풋’이라는 개념은 미래의 약정일에 내 주식을 미리 정해진 가격에 팔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예를 들면 어느 주식을 3개월 후에 50달러에 팔 수 있는 계약을 풋이라 한다. 50달러에 팔 수 있도록 풋계약을 하면 주식 소유자는 실제 주식 가격이 아무리 떨어져도 50달러를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있게 된다.
이렇게 특정 미래에 정해진 가격으로 주식을 팔 수 있는 권리를 풋 옵션이라고 부른다. 이렇듯 풋이란 바로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의 가치 하락을 염려해 미리 최저치를 확정해 놓고 싶은 경우를 위해 만들어진 옵션 상품이다.
그린스펀 풋이라는 용어는 1998년 롱텀 캐피털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당시 롱텀 캐피털이라는 큰 헤지펀드가 러시아 부도사태로 흔들리면서 주식시장이 큰 폭으로 하락하기 시작하자 그린스펀 의장은 이자율을 낮춰 주식시장을 살려냈다.
그 이후 그린스펀 의장은 주식시장이 어려움에 처하면 이자율을 낮춰주는 사람으로 인식이 되었고 그러면서 주식시장은 마치 풋옵션을 사놓은 것처럼 그린스펀이 그 이하로 떨어질 수 없는 최저가를 형성해 준다는 의미에서 그린스펀 풋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난 것이다.
주식시장에서는 기분 좋은 말이지만 그린스펀 풋이라는 용어는 금융계에서 그렇게 고운 시선으로 회자되는 용어는 아니다. 오히려 그린스펀 풋은 주식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시장경제의 원리를 해치는 행위로 인식되는 비판의 시각이 더 많다.
주식투자는 자본주의의 근본원리인 철저한 시장경제의 원칙이 가장 잘 실천되는 분야이다. 누구나 스스로의 위험과 수익의 분석에 따라 투자결정을 하고 이 투자결정의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는 냉엄한 세계이며 주식시장이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이유도 여기 있다.
그런데 금융 당국이 주식시장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구제해 준다면 주식시장의 핵심인 시장경제의 원리를 깨뜨리게 된다는 의미에서 그린스펀 풋은 비판을 받는다. 높은 수익을 위해 높은 위험을 감수한 투자자가 위험의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되는 소위 모럴 해저드, 즉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주식시장이 문제에 빠지면 결국 전체 국민 경제가 어려워질 수 있는데 이를 당국에서 방치하면 안 된다는 주장으로 그린스펀 풋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1998년 롱텀 캐피털의 문제를 덮기 위해 퍼부었던 돈이 2000년 초까지 나스닥의 거품을 만들다 결국 대규모 붕괴를 가져온 결과를 보면 시장경제에서 일반 투자자의 실수를 정부정책으로 구제해 주었을 때 결국 국민 경제는 더 큰 위험에 봉착한다는 역사의 교훈을 읽을 수 있다.
지난 8월부터 전 세계를 강타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각국 중앙은행들의 긴급자금 수혈과 연방은행의 대폭 금리인하로 진정되었다. 금융계가 안정되었으니 일단 연방은행의 조치는 잘 되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인해 금융계는 다시 한번 시장경제에서 발생한 문제를 금융 당국에서 해결해 준다는 도덕적 해이의 숙제를 안게 되었다. 이를 두고 ‘버냉키 풋’이라는 단어가 나타났다. 새로 FRB 의장직을 승계한 버냉키도 전임 그린스펀과 같은 접근방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이번 금리인하 전에 그린스펀 전 의장이 현재의 상황을 1998년과 같다고 한 발언은 그 해결방식도 그 때와 같으면 된다는 암시적 배경이었다는 점에서 버냉키 의장의 접근방식이 그린스펀 의장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해석도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
이번의 조치로 단기적 문제를 해결하고 장기적으로도 안정이 되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그러나 그린스펀 풋처럼 이번의 버냉키 풋이 2000년의 주식시장 거품붕괴를 재연시킬 가능성도 키웠다는 점에서 최근 금리인하 후 전 세계에서 다시 일고 있는 주식시장의 열풍을 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최운하 / 커먼웰스 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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