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식당에서 갈비탕을 주문하면 갈비탕과 밥, 그리고 아주 간단한 반찬만 테이블에 차려진다. 이럴 경우 즐비하게 차려지는 밑반찬에 길들여진 한인들은 무언가 빠진 듯한 허전함을 느끼곤 한다. 바로 몇 마일 떨어진 중국타운이나 일본타운의 식당에서는 음식을 주문할 경우 소위 ‘밑반찬’이라는 게 나오지 않는다. 단지 손님이 주문한 음식과 오차 혹은 냉수만 달랑 차려진다.
손님으로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할 때마다 밑반찬과 관련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손님이 깨끗이 비우지도 않는 밑반찬을 매번 테이블 위에 차려놓는 것은 어리석은 낭비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매번 매 끼마다 수북하게 손님 테이블 위에 차려졌다가 어김없이 쓰레기통 속으로 버려지는 밑반찬의 비용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밑반찬을 준비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등등. 밑반찬 재료와 준비하는 과정에 소요되는 인건비는 결국 손님에게 부담으로 넘겨지는데도 우리들은 이를 아랑곳 않고 천년 습관처럼 밑반찬을 푸짐하게 차려낸다.
또 그럴 리는 없겠지만 손님상에 놓였다가 그대로 남겨진 밑반찬이 아까워 슬쩍 거두어 들였다가 다시 다음 손님의 밥상에 올린다면 이보다 더 위험하고 비위생적인 처사가 또 어디 있을 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도 하곤 했다. 그래서 손님 시절 나는 거창하게 ‘밑반찬 망국론’까지 들먹이곤 했다.
그러나 4년 전 우연히 식당 주인이 되면서 경제성과 위생면에서 늘 불안하고 염려스러웠던 한국음식의 밑반찬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갖기 시작했다. 우리 식당은 젊은 손님들이 고객의 대부분이고 또 타인종 손님들이 전체 고객의 약 70%를 차지한다.
우리 한인들처럼 쌀을 주식으로 하면서도 밑반찬은 거의 없이 식사를 하는 일본인이나 중국 손님들은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다섯 가지의 밑반찬이 공짜로 자신들의 식탁에 차려질 때면 대부분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니, 이게 모두 공짜로 나오는 서비스란 말인가. 또 먹다가 떨어지면 말 한마디에 또 다시 공짜로 리필을 해주다니….”
주문했던 음식이 나오기까지의 기다리는 지루함과 조바심이 밑반찬 애피타이저로 말끔히 해소되는, 기분 좋은 경험이 되고 있는 것을 여러 번 반복해 관찰하면서 “한국 음식이 밑반찬이 그저 골치 아픈, 바람직하지 못한 음식 문화나 식습관은 아니로구나” 하는 생각을 갖기에 이르렀다.
외국인 손님들 가운데 백인이 익숙한 젓가락질로 겉절이를 덥석덥석 집어먹고 매운 비빔냉면을 둘둘 감아먹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든지, 식탁에 앉자마자 “큰 접시로 겉절이를 가득 가져다주세요” 하고 주문을 하는 흑인 손님을 맞이할 때, 또 일본말로 “이것 맛있습니다”라며 얼큰한 감자탕 그릇을 국물까지 싹 비운 후 식당을 떠나는 젊은 일본 손님을 대하게 되면 마치 내가 애국자가 된 듯한 뿌듯함까지 맛보게 된다.
음식은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다. 그리고 음식은 그 민족의 문화를 나타낸다. 미국 식당에서는 평균 25%의 음식이 남아 버려진다는 통계가 있다. 한국음식도 버려지는 비율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제 밑반찬을 과학적이고 경제적인 방향으로 개선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할 때이다.
하지만 지나친 경쟁으로 필요 이상의 밑반찬을 만들어 매번 쓰레기통에다 버려야 하는 낭비만 막을 수 있다면 밑반찬은 우리의 인심을 상징하는 좋은 식문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외국인 손님들에게 기분 좋은 인상을 안겨 주는 것을 매일 매일 목격하면서 이런 생각은 더욱 굳어져 간다.
윤병열 / 호돌이식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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